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아하! 생태] 우리집 난은 왜 꽃이 안피지? 따뜻한 거실서 키우면 안 펴요

입력
2018.01.27 04:40
12면
0 0

작년에 핀 꽃, 올해 안폈다면…

겨울에 추위 겪어야만 꽃눈 형성

얼지 않을 정도로 추운 곳에 둬야

서양란은 향기가 없다?

3만여 종 난초 지구 곳곳에 서식

강한 향부터 은은한 향까지 다양

난초 재배는 감상용?

바닐라 종은 향료ㆍ커피 시럽 활용

한국 등 서식 천마는 한약 재료로

호접란으로 불리는 팔레놉시스의 꽃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밤에 정화능력이 우수해 침실에 두는 것도 좋다. 국립생태원 제공
호접란으로 불리는 팔레놉시스의 꽃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밤에 정화능력이 우수해 침실에 두는 것도 좋다. 국립생태원 제공

많은 분들이 난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갖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서양란(또는 양란)에는 ‘향기가 없다’라는 겁니다. 필자는 2015년 국립생태원에서 세계난전시회를 처음 기획하면서 향기난전시회를 통해 서양란에도 향기가 강하고 좋은 난초들이 많이 있다는 점을 알리고 관람객들에게 향을 맡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적이 있습니다.

캬틀레야, 막시랄리아, 팔레놉시스(이른바 호접란), 덴드로비움 등 많은 난과식물들은 강한 향기부터 은은한 향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향을 갖고 있습니다. 유럽의 한 화장품회사는 난의 다양한 향을 이용해 난초 향수와 화장품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향기가 강한 온시디움속 난초. 국립생태원 제공
향기가 강한 온시디움속 난초. 국립생태원 제공

반면 이름에 난(蘭)이라고 붙어 있어 난과식물로 혼동되기 쉬운 식물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관상용으로 많이 재배되는 군자란과 제주도 토끼섬 자생식물로 유명한 문주란은 수선화과 식물입니다. 또한, 해란 또는 운란이라고 하는 식물은 난과식물이 아니라, 현삼과 식물입니다. 이외에도 엽란, 박쥐란과 같은 식물도 있지요.

난초와 관련한 강의를 할 때마다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꽃이 피었던 한란이나 춘란이 다음 해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는 겁니다. 재배환경을 물어보면 대부분 겨울에도 난방이 잘 된 안방이나 거실에 관리를 한다고 하는데요. 동양란은 겨울에 추위를 겪어야 저온처리가 되어 꽃눈을 형성하는데, 그 기회를 주지 않으면 꽃이 피지 않는 겁니다. 난초의 꽃 피우기는 자식을 기르는 것과 비슷한가 봅니다. 마음이 아프더라도 얼어 죽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추위를 겪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난초의 종 다양성과 생태적 특성

일반적으로 난초는 지구상에 야생종만으로도 적게는 2만8,000여종에서 많게는 3만5,000여종 이상의 종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종 다양성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꽃의 형태변화라든가, 향기의 다양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난과식물은 남극대륙과 극단의 사막지역을 제외하고는 지구상 여러 지역에 넓게 분포하면서 진화해 왔습니다.

식물의 생육은 빛, 습기, 온도 등의 조건에 크게 좌우되는 데, 각각의 환경조건에 맞게 적응하고 형태나 적응방식을 변화하면서 분포지역을 넓혀 왔습니다. 특히, 난의 생육조건은 아주 다양해서 바닐라와 같이 햇빛을 좋아하는 난초가 있는 반면, 한란과 같이 나무 밑의 그늘에서 잘 자라는 난초들도 있습니다. 거미란처럼 잎이 없이 뿌리로만 살아가기도 하고 지상부의 영양기관 발달 없이 꽃대를 올려 개화하고 종자를 맺어 영양분을 땅속 줄기에 저장하는 천마와 같은 난초들도 많이 있습니다.

은은한 커피향이 나는 막시랄리아. 국립생태원 제공
은은한 커피향이 나는 막시랄리아. 국립생태원 제공

난초는 생태적 특성에 따라, 땅 속에 뿌리를 뻗고 영양분을 뿌리에 저장하는 지생란(새우란, 춘란 등), 뿌리가 나무나 바위의 표면에 착생하여 자라는 착생란(풍란, 석곡 등), 그리고 잎과 줄기가 없는 탓에 엽록소도 없이 공생균과 공생하면서 땅 속에서 자라는 부생란(천마, 으름난초 등)으로 분류됩니다.

꽃이 피는 생태적 습성도 아주 다양합니다. 말레이시아반도 등지에 서식하는 심비디움 로지움은 해발 1,500~1,800m에서 꽃을 피우지만, 낮은 지역에서는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반면 폴리스타차 컬트리포미스 같이 기온의 변화가 있어야 꽃을 피우는 난초도 있습니다. 이는 난과식물이 지구상에 넓게 분포하면서 형태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환경변화에 맞게 진화되어 온 생태적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난과식물 꽃의 특징

난과식물의 꽃은 떡잎이 기본적으로 2개인 쌍자엽식물의 꽃과는 사뭇 다른 독특한 구조적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난과식물은 백합과 같은 다른 단자엽식물처럼 여섯 장의 꽃잎 (외화피 3장, 내화피 3장)이 있지만, 모두가 같은 형태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 좌우대칭으로 되어 있어 그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화기(꽃의 기관)가 통 모양처럼 변화된 파피오페딜룸속 난초. 국립생태원 제공
화기(꽃의 기관)가 통 모양처럼 변화된 파피오페딜룸속 난초. 국립생태원 제공

난과식물의 내화피 세 장중 한 장은 여러 형태로 바뀌면서 많은 변화가 생깁니다. 흔히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 부분을 순판(唇弁)이라고 부릅니다. 순판이 평평하지 않고 통으로 된 파피오페딜룸속, 프라그미페디움속, 복주머니난속, 셀레니페디움속 등을 복주머니난아과식물로 분류합니다.

복주머니난아과식물처럼 화기(꽃의 기관)가 통 모양처럼 변화되진 않더라도, 일반 난과식물들의 순판 모양과 색소 변화를 보면 한 종의 식물에 이렇게 많은 변이가 있을 수 있는지 놀라게 됩니다. 난과식물의 꽃가루는 덩어리로 되어 있고, 그 끝에 곤충이 달라붙는 접착부분을 가지고 있는 것도 많습니다.

다윈의 난으로 알려진 마다가스카르섬의 앙그레컴 난초는 거(꽃에 달린 긴 빨대와 같은 구조)가 27~45㎝에 달한다. 국립생태원 제공
다윈의 난으로 알려진 마다가스카르섬의 앙그레컴 난초는 거(꽃에 달린 긴 빨대와 같은 구조)가 27~45㎝에 달한다. 국립생태원 제공

난과식물의 꽃은 곤충에 의한 수분을 위해 특별히 진화된 구조를 갖는 충매화가 많습니다. 매우 제한된 곤충을 대상으로 한 특별한 적응을 볼 수 있는 변화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윈의 난으로 알려진 마다가스카르섬의 앙그레컴 난초의 거(spur·꽃에 달린 긴 빨대와 같은 구조)가 27~45㎝나 되는 게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공적으로 배양되고 증식되는 난초들. 국립생태원 제공
인공적으로 배양되고 증식되는 난초들. 국립생태원 제공

자연상태에서 발아가 어려운 난과식물의 경우 무균파종법이 개발되어 인공적으로 배양되어 증식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다양한 영양분을 갖고 있는 인공배지에 종자를 뿌려 초기 생육에 필요한 양분을 어린 식물에 공급함으로써 공생균을 이용하지 않고 종자의 발아생장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무균에 의한 조직배양기술은 난 산업을 발달시키고 난 애호가들에게 보다 많은 난과식물들을 접하게 하여 난의 대중화에 기여하여 왔습니다. 대만이 세계 난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난의 재배에 유리한 기후적인 특성과 저렴한 인건비도 한 몫을 하고 있지만, 많은 난 연구자가 있고 농가와의 유기적인 협력체계 및 정부의 난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등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난 재배와 품종 개량

서양에서는 18세기 이후 열대성 난들이 많은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하면서 감상용으로 재배되어 왔습니다. 난을 집에서 인공적으로 재배를 하기 위해 헤고판, 코르크판이나 이끼를 사용하는 재배법도 발달하여 왔었고 다양한 교배종들이 만들어지고 등록되어 왔습니다. 그러한 문화들은 동양에서는 일본을 중심으로, 유럽에서는 영국을 중심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난 문화가 확산되어 유명한 각 식물원마다 매년 난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원종을 확보하고 변이종을 찾기 위한 사람들의 욕심은 자생지에서의 난을 채취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관광버스를 동원한 야생춘란 채집이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행위들은 자연상태에서의 난과식물이 사라지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난과식물의 남획은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었고, 현재는 야생난과식물의 국제간 이동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조약(CITES)에 따라 이뤄지고 있습니다.

난과식물의 산업

일부 난초는 감상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산업적으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향료로서의 바닐라와 한약재로서의 천마와 석곡 등이 있습니다.

바날리 향이 원료가 되는 바닐라 난초. 국립생태원 제공
바날리 향이 원료가 되는 바닐라 난초. 국립생태원 제공

바닐라는 멕시코,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이지만, 현재에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멕시코, 과테말라, 브라질, 파라과이, 인도네시아 등에서 재배되고 있습니다. 수확된 바닐라 열매는 발효건조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바닐라 특유의 향을 내는데, 바닐라빈, 바닐라 에센스, 바닐라 오일 등이 향수, 아이스크림, 케이크, 술 등에 널리 이용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커피의 시럽에 이용되면서 이용범위가 더욱 넓어지고 있습니다.

한약재로 가장 유명한 난과식물은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등지에 서식하는 천마입니다. 천마는 잎이 없이 꽃대만 땅속에서 쭉 올라와 여러 꽃을 피우는 데, 돼지감자처럼 땅속 줄기를 형성해 약재로 이용됩니다.

정원식재로 많이 이용되는 자란은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등지에 자생하는 난과식물로, 자란의 뿌리에는 피부와 점막을 보호하는 성분이 들어 있어 위장약이나 종기상처 등에 이용되어 왔습니다.

난 문화 확산과 현대 주거문화

우리나라의 주거문화는 아파트 위주로 되면서 실내난방이 잘 되고 있습니다. 한 겨울에도 반팔 입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우리의 실내환경이 바뀌고 있습니다. 즉, 한겨울에도 보통 최저 20도는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온도 면에서 열대난들이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입니다. 앞으로 애호가들의 난에 대한 관심이 동양란 뿐만 아니라, 종 다양성이 풍부한 서양란으로까지 확산되어 난초를 찾는 경우가 더 많아 질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습니다. 필자는 40여년 전 열 다섯 살 때부터 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난이 대중화하면서 ‘난의 종다양성 확보와 육종∙보급을 통해 농촌발전을 이루고 농촌 자녀들의 교육 질이 향상되어 인간 평등사회를 구현하고 싶다’는 꿈이 실현될 날이 오길 바랍니다.

난은 워낙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기르기 위해서는 전문가를 통해 꼼꼼히 관리방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선물로 난초를 받게 되어 화원에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각 나라의 원예협회나 난 협회의 홈페이지를 찾아 재배방법을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겁니다.

윤필용 국립생태원 생태협력부 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