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수습하느라 비상근무
슬픔은 깊었지만 자취는 단출했다. 할머니를 구하지 못한 소방관 손자는 비상근무 하느라 빈소를 지키지도 못하고 있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희생자 장례가 속속 치러지면서 유족 중엔 당시 출동한 소방관이 두 명이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고(故) 이희정(35)씨 발인이 있던 29일 오전 희윤병원 장례식장. 고인 곁에는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 온 어머니와 남편, 두 여동생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39명 희생자 중 가장 젊은 이씨는 지난해 12월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심하게 다친 뒤 세종병원 2층에 입원해 있다 변을 당했다. 이씨 어머니는 “평소 얼마나 살갑게 굴던 딸인데… 일찍 구조만 됐어도 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자식을 앞서 보내고 어미가 어찌 살어… 인자 우린 우예 살라꼬…”라고 오래 통곡했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빈소를 지키던 이씨 남편 문모(47)씨는 “첫날에는 엄마가 없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던 아들도 이젠 엄마가 더 이상 곁에 없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씨 아들 문모(13)군은 상주로 이름을 올렸지만 거동이 불편해 발인에는 함께하지 못했다. 이씨를 비롯 29일에는 15명의 발인이 엄수됐다.
희생자 유가족 중에는 직접 화재 구조활동을 펼쳤던 소방관도 포함돼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밀양소방서에 따르면 각각 3층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다가 숨진 고 강귀남(89)씨 손자와 환자를 모두 대피시키고 숨진 책임간호사 김점자(49)씨 제부가 밀양소방서에 근무하고 있다. 특히 강 할머니 손자는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직접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벌였지만 끝내 할머니를 구해내지 못했다. 해당 소방관들은 현재 사고 수습으로 비상근무 중이라, 각각 한솔병원과 밀양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도 가보지 못하고 있다.
28일 밤 11시50분 평소 천식을 앓고 있던 김복연(86)씨가 추가로 사망함에 따라, 현재까지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39명, 부상자는 151명이다.
밀양=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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