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티브 사고 실화에 가깝게 담아
우연히 초능력 얻은 평범한 중년
용역과 싸우며 철거촌 영웅으로
#2
무거운 소재에 웃음 상상력 섞어
공동체 복원 소망까지 나아가지만
여러 주제 다루느라 구성은 산만
‘염력’,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물체에 손을 대지 않고 그 물체를 옮기는 초능력.
2016년 여름 영화 ‘부산행’으로 1,150만 관객을 동원한 연상호 감독이 새 영화 ‘염력’(31일 개봉)으로 돌아왔다. 관객을 잡아먹을 듯 달려들던 좀비는 떠났지만, 이번엔 염력을 장착한 소시민 슈퍼히어로가 스크린을 휘젓는다. 빌딩 숲 사이로 사람을 날아 오르게 하고 자동차도 종잇장처럼 구겨버리는 염력을 실감나게 구현하기 위해 130억원(마케팅비 등을 포함한 총제작비)이 투입됐다.
영화는 서민의 삶이 무너진 재개발 철거촌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낸다. 치킨집 청년 사장 신루미(심은경)는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철거 용역의 행패에 엄마를 잃고, 10년간 딸 루미와 떨어져 지냈던 은행 경비원 신석헌(류승룡)은 우연한 기회에 염력을 갖게 된다. 이 염력으로 돈 벌 궁리를 하던 석헌은 나이트클럽에 마술사로 취직해 홀로 남은 루미를 돌보려 한다. 그러나 루미는 철거촌을 떠나지 않고, 석헌은 용역들에게서 루미와 철거민들을 구하려다 철거촌의 영웅으로 거듭난다. 그렇게 한 마음으로 뭉친 루미와 석헌, 철거민들은 경찰ㆍ용역의 강제 진압에 맞서 생존 투쟁을 벌인다.
◆‘염력’ 20자평과 별점
★다섯 개 만점 기준, ☆는 반 개.
현실 고발과 장르적 재미의 무리 없는 조합
딜레마다. 영화의 모티브인 ‘용산 참사’를 전면에 내세우기엔 장르적 컨셉트가 너무 강하고, 그렇다고 액션 판타지로 밀어붙이기엔 현실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그런 이유일까? ‘염력’엔 중간에 멈칫하는 대목들이 있다. 장르적 잔재미와 함께, 뭔가를 설명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다. 그래서 코미디 요소가 종종 끼어들고, 부녀 사이의 감정 코드가 강조되기도 하며, 갑작스레 자본의 폭력성이 부각된다. 이런 다양한 재료들은 전반적으로 큰 무리 없이 짜맞춰지지만, 그만큼 ‘염력’의 질주하는 힘은 연상호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약하다. 그 공백을 채우는 건 컴퓨터그래픽(CG) 스펙터클인데, 슈퍼히어로 액션을 연상시키면서도 많은 부분 절제한다.
여기서부턴 스포일러! ‘염력’의 마무리는 의아하다. 지옥 같은 현실을 겪었던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 재회하는데 그저 행복해 보인다. 그들에게선 트라우마도 느껴지지 않는다. 과연 그토록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과거였을까? 9년 전 그 날 단 한 명도 죽지 않았기를 바라는 이 영화의 염원과 의지는 분명 선하지만, 강렬한 현실에서 시작한 이유인지 이 영화의 해피 엔딩은 조금은 난데없고, 지나치게 장르적이며, 마치 꿈 장면처럼 느껴진다.
김형석 영화평론가
‘부산행’ 보다 빛난 아이디어, 빛 바란 구성
환상을 품는다는 건 절망했다는 뜻이다. 이 지옥 같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내게 초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비극에서 쏘아 올린 판타지 ‘염력’은 그래서 ‘웃프다’. 기중기를 동원한 컨테이너박스 진압, 농성장인 폐건물로 향한 매서운 물대포… 영화에는 ‘용산 참사’의 상처들이 가득하고, 염력으로 이를 막는 신석헌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은 그래서 살풀이다.
‘부산행’에서 좀비들로 세상을 쓸어 버린 연 감독이 다시 ‘칼’을 벼렸다.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를 배경으로 계급화된 폭력을 꼬집은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처럼 날카롭진 않지만,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을 향해 겨눈 칼끝의 방향은 확실하다.
염력이라는 소재가 뜬금없을 수 있는데, 독특한 영화적 상상력을 제법 매끄럽게 풀어냈다. 회심의 한 방은 용병술. tvN 예능프로그램 ‘윤식당’에서 셰프 윤여정의 뒤에서 장유유서를 실천 중인 정유미를 사이코패스로 활용해 흥미로운 반전을 준다.
재기는 빛나지만, 구성이 성기다. 흐름이 뚝뚝 끊기는 게 큰 약점이다. ‘부산행’ 보다 소재는 신선한데 긴장감 등 드라마의 밀도가 떨어진다. 소재의 파격을 뒷받침하는 메시지가 무거워 대중들의 좋고 싫음이 엇갈릴 수 있다.
양승준 기자
현실에 눌리지 않는 기상천외 상상력
판타지 외피를 두른 사회 고발 영화. 초능력이라는 설정을 빼고는,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용산 참사를 거의 실화에 가깝게 이식했다. 언뜻 모순 관계로도 보이는 장르와 소재의 간극을 통해 영화는 관객 스스로 진실을 발견하도록 날카로운 역설법을 구사한다.
‘염력’의 소시민 슈퍼히어로는 세상을 구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국가와 자본의 횡포로부터 가족과 이웃은 지킬 수 있다. 철거촌에 나타난 슈퍼히어로는, 비록 그것이 헛된 상상이라 해도, 9년 전 그날 불타는 망루에서 어떻게든 사람을 살려내고 싶었던 이들의 염원을 대신해 실행한다. 그렇기에 초능력이란 소재는 현실 사회를 향한 냉소적 태도를 품을 수밖에 없다. ‘돼지의 왕’ ‘사이비’ 등 연 감독의 이전 작품들이 보여준 염세적 세계관이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된 듯하다.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코미디를 적절하게 배합한다.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현실에 짓눌리지 않는다는 게 이 영화의 또 다른 미덕이다. 염력으로 사물을 움직여 철거촌에 바리케이트를 쌓는 상상이라니. 연 감독의 용기 있는 발상이 놀랍다. 주인공의 영웅적 활약에 동기가 된 건 부성애이지만, 그 부성애가 감성팔이로 소비되지 않고 더 큰 연대와 공동체 복원에 대한 소망으로 나아간 점도 인상적이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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