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첫 천만 영화인 '신과 함께' 주인공 자홍의 어머니는 청각장애인입니다. 장애인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정작 장애인은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기 힘들었다는 사실, 아시나요?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영화가 개봉과 동시에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천만 영화'를 제때 영화관에서 볼 수 없는 현실에, 많은 장애인들이 문화적 소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일보가 배리어프리 영화의 현실을 카드뉴스로 정리했습니다.
고가혜 인턴기자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합니다.
(♪ 경쾌하고 흥겨운 분위기의 음악 시작) 온유: "흠흐흐~흠흠"
아직 영화 속 인물은 입도 뻥긋하지 않았는데 시작과 동시에 나오는 자막, 혹시 상영 사고인 걸까요?
“자동차 극장에 도착하는 아빠와 온유”, “온유가 조수석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또 허공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영화 장면을 계속 말로 설명하는데요.
평범한 영화와는 다르게 왜 이렇게 정신없이 자막과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는 걸까요?
사실 이 영화는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영화’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목소리’로,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막’으로 영화를 풍성하게 설명하는 것인데요
비장애인에겐 조금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수 있죠.
하지만 우리에겐 당연한 것이 그들에겐 당연하지 않습니다.
평생 소리를 듣지 못했던 사람이 연필을 쓰는 "사각사각" 의성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때문에 배리어프리 영화를 만들 때는 모든 소리를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려 노력합니다.
“(책상 치는 소리) 이렇게 자막을 쓰기 보다는 (탁탁, 책상 치는 소리) 라고 달아줘야 아 책상 치는 소리는 '탁탁'이구나, 배우는 거죠."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김수정 대표
‘Barrier-Free’는 장벽을 허물자는 뜻 그대로 장애인의 문화생활 장벽을 낮추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그러면 정말 그 장벽이 낮아지고 있을까요?
최근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 ‘신과 함께’ 주인공의 어머니는 ‘청각장애인’이었습니다.
정작 장애인들은 이 영화를 한 달 넘게 볼 수 없었다는 사실. 개봉 후에야 자막,해설 작업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 동안 내용은 이미 다 ‘스포’ 당했죠.
지난 16일 배리어프리 버전이 개봉했지만 그마저도 영화관에서는 딱 열흘만 상영했습니다. 지역별로 딱 한 번 있는 상영을 놓치면 더 이상 볼 수도 없었습니다.
'신과 함께'는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니 내 전화 아이받늬" 영화 '범죄도시'는 400만 흥행했지만 배리어프리로 만들어지지도 못했습니다
지난해 만들어진 배리어프리 영화는 30편. 전체 개봉한 한국 영화 465편 중 7%도 되지 않는 수준인데요.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진 배리어프리영화도 영화관에서 상영을 하지 않아 장애인들은 영화를 볼 수가 없습니다.
영화 속 장애인 캐릭터를 분석하는 ‘티리온 테스트’를 도입하는 등 ‘미디어 속 장애인 평등’은 나아졌지만
정작 ‘미디어 밖 장애인 평등’은 외면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요
2011년 개봉했던 영화 '도가니'는 청각장애 아동들이 주인공이지만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청각장애인들에게도 진실이 공유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제작단계부터 자막 상영을 준비했지만, 정작 이를 상영한 영화관은 10곳에 불과했기 때문인데요.
이에 "도가니는 우리들의 이야기인데 왜 우리가 보지 못하느냐"며 영화관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지 6년,
"배리어프리영화 상영을 위해 영화관은 시각장애인에게 해설을, 청각장애인에게 자막과 보청기를 제공하라"며 법원은 시청각장애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며칠 전 국회에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제공 의무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시청각장애인도 앞으로 개봉하는 최신 영화를 영화관에서 바로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극장에서 상영중인 영화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문화적 교류에서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해요.
단순히 영화를 즐기는 것을 넘어, 배리어프리 영화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의 권리입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김수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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