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 노력ㆍ실력으로 준우승
폭설 내린 결승전 연기됐어야”
‘변방 축구’ 베트남을 아시아의 중심으로 밀어 올린 박항서 감독은 30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폭설이 내렸던 결승전 경기는 연기됐어야 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발언에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징계’로 보복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연기 요청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강행됐다. 세계축구연맹(FIFA)에도 AFC에도 관련 규정이 있지만 무시됐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아열대 기후 베트남 선수들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눈밭 경기’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표시한 것이다. 박 감독은 그러면서도 “베트남 축구는 이제 시작”이라며 “설욕의 기회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그가 이끄는 베트남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은 지난 27일 중국에서 열린 ‘AFC U-23’ 대회 우즈베키스탄과의 결승전에서 연장전 후반 종료 1분을 남겨 놓고 실점, 정상에 서는 데 실패했다. 박 감독은 “폭설 때문에 졌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며 “120분 경기 중 마지막 1분을 남겨놓고 집중하지 못했다. 이것도 결국 실력”이라고 말했다.
사실 베트남 일부에서는 이 ‘실력’을 놓고 여전히 말이 많다. ‘감독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결과가 이렇게 다르게 나올 수 있냐’, ‘운 좋은 박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박 감독은 “운도 한 두 번이지, 지금까지 8강에도 한번 들지 못했던 팀이 결승까지 진출했는데 이를 운으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선수들의 노력과 실력으로 공을 돌렸다.
박 감독이 베트남 선수들을 관찰한 지는 4개월. 그는 “선수들의 눈빛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눈빛”이라며 “향수병에 시달릴 때 그 눈빛을 보면 힘이 났다. 이건 다른 코치들도 같이 느낀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베트남 선수들은 기술, 스피드, 체력 면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보다 월등했다”며 “베트남 선수들이 약골이라는 말이 어디서 생겼는지 모르지만 내가 있는 동안 그 편견을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작년 10월 2년 임기로 베트남 축구연맹(VFF)과 계약했다.
박 감독은 순식간에 ‘베트남의 히딩크’가 된 상황이 아직도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그는 “창원시 축구팀 감독으로 있으면서 해외서 뛰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국가대표팀’까지는 아니었다”며 자신을 선택해 전폭적으로 밀어준 VFF에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28일 귀국 후 5시간에 걸친 베트남 국민들의 거리 환영, 응우옌 쑤언 푹 총리 접견, 현지 언론 인터뷰 등 연이은 행사 때문에 박 감독은 “내가 내 일정을 관리하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또 “배로 노력해서 높아진 베트남 국민들의 기대에, 한국 국민들의 응원에 화답하겠다”고 다짐했다. 실제로 이미 ‘U-23 준우승’ 흥분을 가라앉힌 듯, 박 감독은 성인 대표팀을 이끌고 치르게 될 요르단과의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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