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사고는 대개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최고 관리자(Top Management)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대형 인재(人災)를 사회학적 관점으로 분석, 이 분야 세계 권위자로 통하는 찰스 페로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는 충북 제천시 노블휘트니스 스파 사고와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에서 잇달아 발생한 대형 화재를 예방책을 철저히 지키지 않은 탓으로 봤다.
페로 교수는 30일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빈발하는 대형 화재는 점검 부실과 규정 무시, 인력 배치 부족과 과중 업무에 따른 시스템의 주의력 감소, 실무자의 경험 부족 등으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런 실패는 최고 관리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천ㆍ밀양 화재 모두 이런 부류의 인재이며, 사고 방지를 위해 책임자 문책과 더욱 철저한 예방점검 및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페로 교수는 미국 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노심융해 사건 등 대형재난의 원인을 조직 관점에서 분석, 1984년 ‘정상사고’(Normal Accidents) 이론을 제시했다. 아무리 확실하고 복잡한 방재책을 세워도 거대 재난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이론이다. 국내 일부에서 페로 교수 이론을 인용해 최근 빈발한 재난사고도 사전에 막기 어려운 ‘정상사고’라는 주장을 제기했으나, 당사자인 페로 교수가 이를 일축한 것이다.
실제로 제천과 밀양 화재 모두 소방안전 점검이 진행되기는 했지만 유명무실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제천의 경우 전 건물주의 아들이 한동안 점검을 담당했고, 밀양의 경우 병원이 고용한 안전담당자가 ‘이상 없음’ 판정을 내린 안전 점검 결과를 소방서에 제출하는 등, 건물 운영자의 ‘셀프 점검’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화재 진압 과정에서도 공통적으로 지역 소방서의 인력과 장비 부족이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를 키운 주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페로 교수는 대형 화재 사고는 “관리자 대부분이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오류로 인해 시스템이 붕괴되는 ‘정상사고’의 범주에 들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는 대형 화재의 경우 비교적 문제의 원인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 사고 같은 정상사고는 예방 절차가 복잡하고 여러 업무가 긴밀하게 결합돼 있어 사고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들 경우 발생하는데, 대형 화재 예방 업무는 이런 복잡성이 떨어진다.
페로 교수는 관련 저서를 통해서도, “정상사고로 분류되지 않는 ‘비정상사고’는 즉각 해법이 나타나긴 어려워도 안전 대책을 계속 강화하고 더 엄격하게 지키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자발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는 건 오히려 전체 예방 시스템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며 중앙 집중화된 대책 마련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화재 예방에서도 민간에 예방의무를 강조하는 대신, 정부 차원의 실효성 있는 규제와 관리 감독이 요구된다는 의미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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