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 결정할 윤리위원회 설치 59곳
주로 대형병원에 한정돼 한계
가족 의견 엇갈릴때 처리도 미정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존엄사를 합법화한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 4일 본격 시행됐다. 하지만 당분간은 실제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한 건 일부 대형병원으로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과정에서 의료인 처벌 규정 등에 대한 반발도 커 법 시행 초기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날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됨에 따라 앞으로 연명의료 중단이나 유보를 원하는 환자나 가족은 의료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의료기관에서 담당의사와 전문의 1명의 진단을 받고,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 환자로 판단되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이후 환자의 의사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의학적 판단이 내려지면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투여 등 네 가지 연명의료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단 환자나 가족의 마음이 바뀐다면 언제든 계획서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를 이행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일부 대형병원에 불과하다. 최도자 국민의당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전국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3,324곳 중 연명의료 중단 결정과 이행 업무를 할 수 있는 ‘의료윤리위원회’가 설치된 곳은 59곳, 단 1.8%에 불과했다. 상급종합병원은 23곳으로 절반 이상(54.8%)이었지만 종합병원은 10%(30곳), 병원은 0.1%(2곳), 요양병원은 0.3%(4곳)에 그쳤다. 중소병원이나 요양병원을 이용하고 있는 환자들은 존엄사 기회를 가질 수조차 없는 실정이다.
준비 미흡은 시행법과 현장 상황의 괴리 때문에 발생한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이다. 현재 윤리위 구성은 의료인이 아닌 종교계나 법조계, 윤리학계, 시민단체 등의 추천을 받은 2명을 꼭 포함해 5명 이상으로 구성하게끔 되어 있는데, 중소병원이나 요양병원들은 의료인도 부족한 상황에서 윤리위를 구성할 여력이 없다는 게 관련 단체들의 변이다. 이 때문에 복지부는 다른 의료기관 윤리위원회와 업무수행 위탁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거나, 공용윤리위원회에 해당 업무를 위탁해도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운영 가능하게 했지만 현재까지 복지부가 지정한 공용윤리위원회는 한 곳도 없다.
연명의료결정법 내용이 복잡하고 방대한 것에 비해 구체적 기준 마련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현재 시행법은 환자의 건강상태가 악화돼 본인의 의사를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상태라면 가족 2인 이상의 진술을 토대로 결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2인 이상이 같은 진술을 해도 나머지 가족이 다른 진술을 할 때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 다양한 상황에 대한 세부적인 판단 기준은 없다. 또한 환자 의사와 상관없이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연명의료계획서 문서를 허위로 작성할 경우 등에 의사 처벌규정(연명의료결정법 제39조)을 두고 있는데, 이것이 연명의료 중단 결정 시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의료계의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복지부는 제도를 시행해나가며 미흡한 점은 적극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박미라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2월 중 개별 의료기관들의 윤리위 설치 현황을 받아 본 후 공용윤리위원회를 지정할 계획이어서 현재까지 활성화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의료인 처벌규정도 현재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을 1년 유예하는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만큼 2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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