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교과서 집필기준 시안 공개
“민주주의 포괄적 용어로 사용”
“인민민주주의와 구별 가능한가”
6ㆍ25 전쟁 ‘남침’ 용어도 빠져
“집필기준 최소화로 생긴 일” 반박
2020학년도부터 중ㆍ고교 학생들이 쓸 역사 교과서가 또다시 이념 논쟁의 중심에 섰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5월 출범 직후 “역사 교육이 정치적 논리에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며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였던 역사 국정교과서 폐기를 공식화한 뒤 마련하고 있는 새로운 집필기준에 이번에는 보수 진영이 발끈하고 나서는 모습이다. 새 역사ㆍ한국사 검정교과서 집필 기준을 마련 중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달 3번째 공청회에서 시안을 공개했는데, 기존 역사관을 뒤집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가장 큰 쟁점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 대신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사용된 부분이다. 예를 들어 현행 2009 개정 교육과정 상 고등학교 한국사 집필기준에는 ‘자유민주주의 발전과정과 남겨진 과제를 살펴본다’고 서술돼 있지만, 새 집필기준 시안에는 ‘정권에 맞서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과정을 파악한다’로 바뀌었다.
교육부는 “민주주의를 포괄하는 용어로 쓴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1일 헌법 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삭제한다고 브리핑을 했다가 정정한 것과 맞물려 이념논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자유민주’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갖는 진보 진영의 요구를 교육부가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 적극 반영했다는 것이다. 함진규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북한도 스스로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라 칭하는데, 자유를 빼버리면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 어떻게 구별하겠다는 것이냐. 교육부까지 나서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고 왜곡된 역사인식을 주입하려 한다”고 날을 세웠다. 바른정당도 3일 논평을 통해 “이 정부 들어 굳이 (역사교과서 상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되돌리려는 것은 다시 불필요한 이념논쟁을 되풀이하겠다는 작심 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새 시안에 6ㆍ25 전쟁 기술 부문에서 ‘북한의 남침’ 용어가 사라진 것도 논란이다. 현행 집필기준은 ‘6ㆍ25 전쟁의 개전(開戰)에 있어서 북한의 불법 남침을 명확히 밝히고’라고 서술하고 있지만, 새 집필기준에는 ‘6ㆍ25 전쟁의 전개 과정과 피해 상황, 전후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는 과정을 살펴본다’라고만 설명돼 있다. 보수 학계에선 6ㆍ25 전쟁이 북한군의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전통주의’ 해석을 정설로 보고 있는데도 집필기준에서 남침 용어를 뺀 것은 역사해석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수정주의 역사관’을 교과서에 담을 수 있도록 한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역사 교과서 집필 실무를 담당해 온 학자들은 이번 논란이 그간 너무 세세하게 교과서 내용을 규제했던 집필기준을 최소화하면서 생긴 일이라고 반박했다. 역사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도면회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은 일종의 검열 장치처럼 작용해왔는데 특히 국정화가 시작되며 너무 일일이 기술 내용을 제재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며 “이번 시안은 이러한 집필진들의 요구와 다양성ㆍ창의성에 방점을 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를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들이 바뀐 교육과정에 따라 어떻게 수업할지를 고민하는 게 본질인데 너무 단어 사용에 논의가 집중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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