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집인들 중복 수당 챙기려
가입자에 ‘번호 이동’ 부추겨
재정 악화→소비자 피해 악순환
공정위, 모집인 홈피 공개 등 검토
상품정보 부실 제공 관행에
회사ㆍ모집인 연대책임도 가능
상조회사는 가입자에게 다달이 회비를 받아 그 돈으로 가입자나 가입자 가족의 사망 시 장례 서비스를 제공한다. 모집인은 상조회사를 대신해 가입자를 모집하고 상조계약의 체결을 중개한다. 모집인은 계약 1건당 상조회사로부터 총 계약금의 10~30%를 ‘모집수당’으로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A모집인이 데려 온 가입자가 ‘할부금 월 3만원, 만기 10년(120개월)’ 계약을 하면 B상조회사는 모집수당 36만원(360만원*10%)을 지급한다.
그런데 이후 A모집인이 가입자에게 “C상조회사 서비스가 더 좋다”며 권유하는 일이 업계에선 비일비재하다. 고객이 계약을 이관하면 A모집인은 C상조회사에서 또 다시 모집수당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상조업계에선 ‘번호이동’이라고 부른다. 이런 번호이동이 수 차례 반복되면 ‘과도한 모집수당 지급→상조회사 재정 악화→소비자 피해’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처럼 상조회사 모집인이 이리 저리 업체를 옮겨 다니며 과도한 수당을 받는 부당 행위를 관리ㆍ감독하기 위해 상조회사 모집인 등록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7일 “할부거래법 개정해, 모집인은 상조회사에 등록하고 회사는 모집인 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은행ㆍ보험 등 금융권에 도입된 대출모집인 등록제를 참조해 구체적 방안을 마련한 후 연내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모집인은 상조회사에 소속(고용)되지 않은 개인사업자다. 공정위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상조업계 모집인은 5만6,000명(190개 업체)이다. 상조회사 가입자 수가 2013년 368만명에서 지난해 9월말 기준 502만명까지 늘어난 만큼 그 동안 모집인도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정위가 모집인 등록제 카드를 꺼내든 것은 관리ㆍ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의 영업 행태가 결국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일부 모집인이 고객에게 ‘상조회사 환승’을 꼬드기며 모집수당을 수 차례 중복으로 챙겨도 뾰족한 방책이 없다. 가입자가 계약을 이관(번호이동)할 경우 상조회사가 모집인에게 수당 지급을 중단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모집수당은 계약 3개월 안에 50~70%가 지급되는 구조여서 별 효과가 없다. 공정위 관계자는 “경쟁 과열로 상조회사가 신규고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을 일부 모집인이 악용하고 있다”며 “등록제가 도입되면 모집인 정보가 확보돼 관리ㆍ감독도 수월해지고, 상조회사가 모집인 교육을 강화할 것으로 보여 대다수 ‘정상’ 모집인의 역량도 제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집인이 가입자에게 상품정보를 부실하게 제공하는 관행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기대된다. 그 동안 모집인이 가입자에게 상조상품을 만기 시 100% 환급이 가능한 적금으로 설명하거나, 계약서 내용과 달리 ‘반값’ 상품으로 속이는 사례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가입자(고객)가 상조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 모집인과 이런 계약을 체결한 경우, 모집인과 상조회사 중 누가 책임을 질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등록제가 도입되면 모집인과 등록 상조회사에 ‘연대책임’을 지울 수 있다. 성주호 경희대 교수는 “카드사의 경우 모집인의 부실계약에 따른 배상책임은 1차적으로 회사에 지우고 그 후 회사가 모집인에 구상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상조회사에도 이 같은 체계가 도입되면 지금처럼 ‘무조건 팔고 보자’ 식의 관행이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 교수는 또 “보험사 독립대리점(GA)처럼 모집인이 상조회사 한 곳에만 등록해 그 회사 상품만 팔게 하고 2년마다 갱신계약을 하는 ‘1인 1상조회사 전속주의’가 바람직하다”며 “1,2인 가구 증가로 상조서비스 수요는 향후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등록제 도입을 통한 시장질서 정상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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