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공직자들 사이 그 문제
어디 가서 거론하지 마라
그 사람들이 장관도 될텐데…
성의 있게 수사 해주겠니?”
검찰ㆍ국세청 고위직 등에
전방위 로비 가능성 시사
공군비행장 인근 주민들의 소음피해 배상금(지연이자)을 가로챈 혐의를 받아온 중견 변호사가 검찰과 국세청 등 사정기관 소속 고위공무원들에게 금품로비를 한 구체적인 정황이 포착됐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일보가 입수한 최모(57) 변호사의 대화 녹취록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국일보가 7일 A4용지 수백 페이지 분량의 녹취록을 분석한 결과 최 변호사는 2014년 5월 사이가 틀어진 자신의 사업 파트너 A씨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고위공무원 비리에 대해 수사기관에 제보하지 말 것을 여러 차례 요청했다. A씨는 당시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최 변호사로부터 고소를 당해 사법처리가 임박하자, 자신이 알고 있는 최 변호사와 고위공무원들과의 커넥션을 제보할 것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최 변호사는 다른 주제로 대화를 하다가도 불안한 듯 고위공직자 비리 문제로 돌아와 ‘어디 가서 떠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는 “나하고 공직자들 사이에 그 문제는 어디 가서 거론하지 마. 그 사람들이 장관도 되고 그럴 텐데. 내가 그 사람들 덕 받고 그러면 너도 그 사람들 덕 받는 것 아니냐. 너도 알 거 아니냐. 검찰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 아니냐. 국세청에서도 최고 잘 나가고”라고 언급했다. 최 변호사는 사안의 파괴력을 의식한 듯 “너가 제보하게 되면 그 사람 옷 벗게 된다. 나도 평생 그 사람 떠안아야 되는 거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 변호사는 A씨가 제보하게 될 구체적인 내용과 고위공무원 이름을 언급하지 않자, 초조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 변호사는 “진짜 공무원 내용 안 나오지? 검찰 공무원. 뭐 전달되고 이런 것 나오냐”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최 변호사의 거듭된 요청에도 A씨가 제보를 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주지 않자, 이번엔 제보해도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변호사는 “제보하면 고위공직자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냐. 너가 제보한 거를 어느 수사기관에서 성의 있게 해주겠니. 그런 사람들이 방어능력이 없을 것 같니”라고 확신했다. 최 변호사는 또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사실 공직자 부분밖에 없어. 근데 내가 그 사람들한테 ‘조심하십시오’ 말하면 내 얼굴에 먹칠하니까 그런 전화는 못하고 있어. 나머지는 다 선제대응을 했어”라고 말했다. 수사기관에 미리 손을 써놓은 듯, 철저히 대비했음을 암시한 것이다.
실제로 A씨는 수감생활을 시작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여러 차례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출정조사까지 받았지만 최 변호사 관련 금품로비 수사는 진행된 적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잘 나가는 고위층 인사 2명이 최 변호사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범죄첩보를 보고한 검찰 수사관이 대검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앞서 최 변호사는 비행장 주변 주민들에게 지급돼야 할 배상금 지연이자 142억원을 빼돌린 혐의(업무상 횡령 등)로 지난해 1월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으며, 지난 6일에는 거액을 탈세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강철원 기자 strong@hankookilbo.com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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