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뺀 민주주의, 표현 자체가 잘못된 건 아냐
새 교과서 집필 방향, 포괄적 원칙만 제시
외고ㆍ자사고 폐지, 강남 집값과 관련 없어
저학년 영어수업 금지 원칙 손 안댈 것
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 방안 취소 안해
“총리 말씀을 오해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은 공식 인터뷰에서 속내를 잘 드러내는 법이 없다. 경기도교육감 재직 시절 ‘혁신학교’ 등 굵직한 교육개혁 정책을 밀어붙이면서도 정치적 야심으로 비칠 수 있는 발언을 한 적은 극히 드물다. 지난해 7월 대한민국 교육 수장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절대평가 전환, 자율형사립고(자사고)ㆍ외국어고(외고)ㆍ국제고 폐지, 유치원ㆍ어린이집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등 숱한 논란을 부른 정책을 쏟아내면서도 “개선 방안을 찾겠다”는 입장이 전부였다.
김 부총리는 8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도 다양한 물음에 명쾌한 해법을 내놓지는 않았다. “의견을 좀 더 듣겠다” “신중히 검토하겠다” “그런 측면도 있다” 등 신중한 답변이 많았다. 하지만 진보교육감 출신답게 문재인 정부의 교육관과 직결될 수 있는 사안에는 단호하게 반응했다. 최근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로 바뀐 것과 관련 “의견 수렴 과정에 문제가 있을지 몰라도 민주주의란 표현 자체가 틀린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사고ㆍ외고 폐지 정책이 강남 집값을 들썩이게 한다는 비판은 “근거 없는 공세”라고 일축했고, 보수 교원단체가 반발하는 교장공모제 확대안 역시 “입법을 미룰 이유가 없다”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인터뷰=이영태 정책사회부장
-전교조가 교육부와 각 시ㆍ도교육청에 전임자 33명의 휴직을 신청했다. 받아줄 의향이 있나.
“현재 전교조는 법외노조로 돼 있다. 교육부가 전임자를 공식 인정할 수는 없고, 시ㆍ도교육청들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의 문제는 남아 있다.”
-만약 교육청에서 휴직을 수용하면?
“일단 개별 케이스별로 법적 자문을 구할 생각이지만, 전교조는 기본적으로 (현행법 아래서는) 법이 인정하는 노조가 아니어서 대법원 판결까지 큰 상황 변화(휴직 수용)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전교조는 2013년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이후 통보 처분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냈으나 1ㆍ2심에서 모두 졌다. 대법원 판결은 현재 2년째 계류 중이다.
-역사교과서 문제가 다시 논란이다. 이낙연 총리가 ‘자유민주주의’나 ‘6ㆍ25남침’ 표현이 새 교과서 집필기준 시안에서 빠진 것과 관련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여당의 개헌 시 ‘자유’ 표현 삭제 번복 논란에는 ‘실수’라는 말도 했다.
“총리 말씀을 오해하는 것 같다. 실수라고 한 총리 발언은 논의 과정을 문제 삼은 것이지 ‘자유’를 뺀 ‘민주주의’ 표현 자체가 잘못됐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남침 삭제 등 새 교과서 집필 방향이 옳다고 보는가.
“2020학년도부터 바뀔 중학교 역사 및 고교 한국사 검정교과서의 집필 기준은 ‘대강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정부는 포괄적 원칙만 제시하고 가급적 기준을 최소화ㆍ간소화겠다는 얘기다. 그간 역사교과서 내용과 구성에 관한 지침을 상세하게 제시해 불거진 소모적 논란을 지양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교육과정평가원 최종안과 학계 의견 수렴, 교육과정 심의 등 법이 정한 절차를 거치면서 충분히 조율 가능한 사안이다.”
-이전 보수정부의 교육정책을 뒤집는 여러 조치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외고ㆍ자사고 폐지 방침 발표 이후 서울 강남 집값을 부추겨 8학군 부활 우려까지 나오는데.
“지난해 11월 고교 입시를 동시 선발하는 고교체제 개편 1단계 로드맵 발표만 갖고 강남 부동산 시장이 과열됐다고 주장하는 일부 시각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개인적으로도 인정할 수 없다. 지난달 31일 국토교통부도 교육부 조치가 강남 집값을 올렸다는 근거는 없다고 공식 확인했다. 상관관계를 입증하려면 매매가보다 전ㆍ월세가가 폭등해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도 없고, 오히려 강남 지역 전입이 줄어드는 추세다. 부정확한 정보로 심리적 불안과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만 커지고 있다.”
-꾸준한 ‘강남 선호’ 현상을 교육 문제를 완전히 떼어 놓고 바라볼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인정한다. 그래서 새 정부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투명화하는 등 강남 쏠림을 일부분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여러 혁신 정책의 미래를 예단하기는 어려우나 특정 교육정책이 특정 지역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대입 정책 변화에도 우려가 많다. 비록 시행 여부가 1년 유예되긴 했으나 수능 절대평가제 전환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당장 2018학년도부터 절대평가로 바뀐 영어의 경우 서울대 정시모집에서 4등급을 받고도 합격한 사례가 나왔다. 변별력 약화를 지적하는데.
“그건 부작용이 아닌 절대평가제의 효과로 설명하고 싶다. 이제 특정 과목 성적이 나쁘더라도 다른 과목에서 만회할 길이 열렸다는 의미 아닌가. 시험 성적이 골고루 반영될 여지가 커졌다.”
-그래도 수능 시험을 전부 절대평가로 시행하면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학들은 수능 절대평가가 되면 논술시험을 도입하겠다고 하는데.
“제도 변경에 따른 변화는 불가피하다. 수능 절대평가 전면 시행을 유예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까지 학생들을 1등부터 줄 세워 선발하는 입시 방식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 대학 입장은 입시 정책을 짤 때 중요한 반영 요소이지만, 성적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전형이 아니라면 각 대학이 추구하는 인재상에 맞게 학생을 뽑는 자율성은 일부분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8월에 나올 대입 정책 개편안의 방향성은 무엇인가.
“학종 신뢰성 제고, 수능 방식 변경, 수능 수시ㆍ정시 실시 시기 조정 등 크게 세가지이다.”
-학종과 관련해선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항목을 기존 10개에서 7,8개로 줄인다는 보도가 나왔다.
“소논문과 교외수상 실적 등 사교육이나 부모 지원 정도에 따라 성과 편차가 심한 학교 밖 활동은 배제하기로 원칙을 정했다. 학내 활동 중에서도 교과과정과 무관한 항목은 제외하는 쪽으로 검토 중이다. 교내수상 실적 역시 교육과정과의 연관성을 따져 배제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정부가 최근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방침을 번복하면서 결과적으로 초등학교 1ㆍ2학년생만 영어 공교육을 못 받게 됐다. 누가 봐도 기형적 구조인데.
“겉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정책 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본다.”
-방과후 수업을 금지하면 학부모들은 사교육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초등 1ㆍ2학년도 방과후 영어수업을 허용하도록 법 개정에 나설 의향은 없나.
“저학년 초등학교 영어 수업 금지 원칙은 당분간 손을 댈 생각이 없다. 학부모들은 영어도 공교육에서 지원해 주길 원하는데 이를 위해선 저학년 영어 사교육을 규제하고, 또 의존도를 줄여 나가는 작업이 요구된다. 대신 초등 3학년이 되면 알파벳부터 시작해 학교에서 제대로 영어를 가르치겠다는 구상이다. 농ㆍ산ㆍ어촌 가정과 저소득층에 영어 자율수강권을 확대하는 등 격차 해소 로드맵도 세워져 있다. 그 이전 학습 단계까지는 사교육 규제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 방안에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교총)이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교총이 제시하는 교장공모제 반대 논거를 이해하기 어렵다. 교총 측은 자격증 없는 교사가 교장이 되면 교직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는데, 작년 3월 기준으로 전국 국ㆍ공립 학교 9,955곳 중 비자격 교장은 56명으로 비중이 0.6%밖에 안된다. 내부형 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자율형공립고 및 자율학교도 1,655개교에 불과하다. 오히려 자율학교로 제한한 내부형 공모제를 전체 학교로 확대해 달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앞서 5일 입법예고 기간이 끝난 만큼 일부 조정 여지는 있지만 확대 정책 자체를 취소할 일은 없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교육공무원 임용령 개정안을 통해 지금까지 15%로 제한했던 경력 15년 이상 평교사가 교장에 임용될 수 있는 내용의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전면 확대하겠다고 입법예고했다.
-‘김상곤표 교육정책’이 무엇인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한다. 한 마디로 요약해 달라.
“공교육 정상화와 대학 서열화 및 학벌주의 타파, 4차산업혁명에 걸맞은 융ㆍ복합인재 양성이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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