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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블랙팬서’를 잡아라… ‘설 극장가 대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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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블랙팬서’를 잡아라… ‘설 극장가 대혼전’

입력
2018.02.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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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롭도다, 4일간의 설 연휴. 귀하고도 귀한 이 시간을 늦잠과 낮잠과 밀린잠으로 헛되이 흘려 보낼 텐가. 기름진 명절 음식에 배부른 몸을 일으켜 가족들과 사뿐사뿐 극장나들이를 해 보자.

이번 설 연휴에도 극장가에선 총성 없는 전쟁이 펼쳐진다. 치열하기로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결승전 못지않다. 할리우드 영화사 마블 스튜디오의 10주년 신작 ‘블랙팬서’가 일찌감치 설 개봉을 예고해 어지간한 영화들은 알아서 개봉을 피했으나, 용기 있게 출사표를 던진 ‘대인배’ 영화들 덕에 구멍 없는 대진표가 짜였다. 3편으로 돌아온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과 강동원의 주연 복귀작 ‘골든 슬럼버’, 신선한 발상이 돋보이는 ‘흥부’가 충무로의 자존심을 걸었고, 가족영화 ‘패딩턴2’와 ‘겨울왕국의 무민’은 각본 없는 반전 드라마를 꿈꾼다.

‘블랙팬서’에서 티찰라(왼쪽)와 숙적 킬몽거가 왕위 승계를 두고 대결하는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블랙팬서’에서 티찰라(왼쪽)와 숙적 킬몽거가 왕위 승계를 두고 대결하는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에서 비밀 수사를 위해 서커스단에 잠입한 서필(왼쪽)과 김민이 묘기를 선보이는 장면. 쇼박스 제공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에서 비밀 수사를 위해 서커스단에 잠입한 서필(왼쪽)과 김민이 묘기를 선보이는 장면. 쇼박스 제공

마블 시리즈 VS 토종 시리즈

‘블랙팬서’는 존재감부터 압도적이다. 마블의 첫 흑인 슈퍼히어로라는 상징성에 블랙팬서의 첫 단독 영화라는 화제성이 보태져 경쟁작의 기세를 꺾는다.

‘블랙팬서’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이후 아프리카 은둔 왕국 와칸다의 국왕이 된 티찰라(채드윅 보스먼)가 와칸다에만 존재하는 희귀 금속 비브라늄을 노리는 음모에 맞서며 영웅의 책무를 깨닫는 과정을 그린다. 왕권을 두고 대립하는 티찰라와 숙적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의 격투는 박력 넘치고, 티찰라를 돕는 전사 니키아(루피타 뇽)와 오코예(다나이 구리라) 등 강인한 여성 캐릭터들은 혁신적이다.

‘블랙팬서’의 별명은 ‘부산팬서’다. 부산 광안대교와 마린시티, 자갈치시장, 사직동 일대를 배경으로 차량 추격전과 액션 장면이 펼쳐진다. 배우들의 한국어 대사는 깨알 같은 덤이다. (14일 개봉ㆍ12세 관람가)

마블 시리즈에 맞서는 토종 시리즈의 저력도 만만치 않다. ‘청룽(성룡) 영화’를 밀어내고 ‘설날 영화’로 자리매김한 ‘조선명탐정’이 3편 ‘흡혈괴마의 비밀’로 다시 돌아왔다. 2011년 1편 ‘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선 조선의 공납 비리를 파헤치고, 2015년 2편 ‘사라진 놉의 딸’에선 불량 은괴 유통 사건을 추적했던 탐정 콤비가 3편에선 미스터리한 연쇄살인 사건에 맞닥뜨린다. 서양 귀신 흡혈귀를 등장시켜 전편보다 오락성이 짙어졌다. 기이한 여인 월령(김지원)의 숨겨진 사연이 후반부에 눈물을 보탠다.

허세와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탐정 김민(김명민)과 그의 영원한 단짝 서필(오달수)이 펼치는 알콩달콩 호흡은 ‘조선명탐정’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다. 김민의 참신한 새 발명품도 놓치지 말아야겠다. (8일 개봉ㆍ12세 관람가)

배우 강동원의 스크린 복귀작 ‘골든 슬럼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강동원의 스크린 복귀작 ‘골든 슬럼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흥부’는 고전소설 흥부전을 모티브로 새로운 세상을 꿈꾼 민초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흥부’는 고전소설 흥부전을 모티브로 새로운 세상을 꿈꾼 민초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현대물 VS 사극

설을 겨냥한 기획 상품들 사이에서 오직 작품 자체로 승부하겠다며 독자 노선을 선언한 영화도 있다. 배우 강동원의 복귀작으로 관심을 모은 ‘골든 슬럼버’다. 유력 대선후보를 암살한 폭탄 테러 용의자로 몰린 택배기사 건우(강동원)의 도주극을 담았다. 누명을 벗으려면 끝까지 도망쳐야 하지만 그럴 때마다 친구들이 위험에 빠지는 아이러니를 겪으며 건우는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기 시작한다. 거대 권력에 의해 평범한 개인의 삶이 조작된다는 설정은 현실을 반추하게 하고,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작은 신뢰가 어떻게 희망을 일으켜 세우는지 묵직한 메시지도 심는다.

일본의 이사카 고타로 작가가 쓴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다. 일본에서도 영화로 제작돼 한국 영화팬들에게도 알려졌다. 원작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다. (14일 개봉ㆍ15세 관람가)

명절 분위기를 돋우는 사극 영화가 또 있다. ‘흥부’는 고전소설 흥부전을 풍자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권력 다툼에 백성의 삶이 파탄 난 조선 헌종 14년. 엽색 소설로 이름을 날린 천재작가 흥부(정우)는 잃어버린 형 놀부의 행방을 수소문하다 백성의 정신적 지도자 조혁(김주혁)을 만난다. 조혁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흥부는 우연히 조혁의 형인 세도가 조항리(정진영)의 야욕을 목격하고, 조혁은 흥부에게 자신과 형 조항리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라고 권한다.

영화는 ‘흥부전을 흥부가 썼다’는 색다른 발상에서 출발해 ‘백성이 나라의 근간’이라는 메시지를 향해 뚜벅뚜벅 직진한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김주혁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유독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14일 개봉ㆍ12세 관람가)

‘패딩턴2’에서 꼬마 곰 패딩턴의 매력을 느껴보자. 누리픽쳐스 제공
‘패딩턴2’에서 꼬마 곰 패딩턴의 매력을 느껴보자. 누리픽쳐스 제공
‘겨울왕국의 무민’도 놓치면 아까운 가족영화다. 안다미로 제공
‘겨울왕국의 무민’도 놓치면 아까운 가족영화다. 안다미로 제공

패밀리 배틀

온 가족이 함께 볼 영화를 고를 때 결정권은 아이들에게 주어진다. 아이들이 선택해야 영화도 흥행한다. 가족영화는 설 극장가의 복병이다.

영국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3주간 1위를 기록했던 ‘패딩턴2’는 복병의 자격이 충분하다. 사랑스러운 꼬마 곰 패딩턴(벤 위쇼)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2015년 개봉한 1편에서 브라운 가족을 만나 런던에 정착한 패딩턴은 2편에서 새로운 사건에 휘말린다. 루시 숙모의 100번째 생일 선물로 팝업북을 사려고 창문닦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우연히 변장의 대가 피닉스(휴 그랜트)가 팝업북을 훔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를 쫓다가 도둑 누명을 쓴다. 브라운 가족은 진범을 잡으려 고군분투하고, 패딩턴에겐 ‘슬기로운 감빵 생활’이 시작된다.

영화엔 인상적인 시퀀스가 많다. 패딩턴이 지형지물을 이용해 탈옥하는 장면과 하이라이트인 열차 추격 장면은 특히 압권이다.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위트가 입가를 웃음으로 물들이고, 패딩턴의 착한 심성은 가슴을 데운다. (8일 개봉ㆍ전체관람가)

핀란드의 국민 캐릭터 무민도 설 연휴에 만날 수 있다. 무민 가족과 친구들의 겨울나기를 그린 ‘겨울왕국의 무민’이 관객을 찾아온다. 겨울잠을 준비하던 무민 가족 앞에 헤뮬렌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와 크리스마스가 무엇인지 가르쳐주겠다고 오지랖을 부리면서 무민 가족은 좌충우돌 소동에 휘말린다. 원단 질감이 살아 있는 캐릭터는 포근하고, 요즘 보기 드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이 색다른 시각적 경험으로 다가온다.

원작자 토베 얀손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괴물 트롤을 귀엽고 앙증맞게 표현해 무민을 창조했다. 그림책, 만화, 소설, 연극 등으로도 제작돼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번 영화에선 특히 사랑스럽다. 소장 욕구를 절로 불러 일으킨다. (8일 개봉ㆍ전체관람가)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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