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 폭로
“과거 배우 시절 숙소로 불러내
안마 시키고 성추행 해…
부끄럽지 않은 선배 되려 용기 내”
이윤택은 내달 공연 모두 취소
성추행 인정한 이명행도 하차
국내 연극계 대표 연출가인 이윤택(66)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과거 배우를 성추행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모든 활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연극계에서도 ‘미투(MeTooㆍ나도 당했다) 운동’이 퍼져나갈 조짐이다.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14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이윤택 예술감독이 지난 잘못을 반성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근신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밝혔다. 연희단거리패는 25일까지 30스튜디오에서 공연예정이었던 이윤택 연출가의 ‘수업’ 공연을 중단하고, 추후 예정된 이 연출가 작품들을 모두 취소했다. 이 연출가는 연희단거리패 외부 작업들도 모두 취소 수순을 밟고 있다.
앞서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는 이날 새벽 페이스북 자신의 계정을 통해 이 연출가가 과거 배우였던 자신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김 대표는 이 연출가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당시 공연했던 연극이 ‘오구’였다고 언급해 글에 등장하는 연출가가 이윤택 연출가임을 암시했다.
김 대표는 이 연출가가 당시 숙소인 여관방에 불러 안마를 시키더니 성기 주변을 주무르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본인의 기를 푸는 방법이라며 여자 단원에게 안마를 시켰다고 덧붙였다. 예정된 공연 일정을 소화환 뒤 김 대표는 극단에서 탈퇴했다. 그는 “그(이 연출가)가 연극계 선배로 무엇을 대표해서 발언할 때마다, 멋진 작업을 만들어냈다는 극찬의 기사들을 대할 때마다 구역질이 일었지만 피하는 방법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이제 대학로 중간 선배쯤인 내가 작업을 해나갈 많은 후배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용기를 낸 이유를 밝혔다.
이윤택 연출가가 1980년대 연극계에 입문해 동아연극상, 서울연극제, 백상예술대상 등 각종 연극상을 휩쓸며 연출력을 인정받아 온 연극계 원로라는 점에서 이번 폭로의 파장은 더 크다. 이 연출가는 ‘오구’ ‘청부’ ‘문제적 인간 연산’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등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었다. 국립극단 예술감독, 서울예술단 대표감독 등을 지냈다.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연설을 했던 그는 이후 정부지원 사업에 연이어 탈락해 ‘문화계 블랙리스트 1호’로 꼽히기도 했다.
공연계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가해자가 권력관계상 우위에 있어 피해 사실을 알릴 엄두를 내지 못했을 뿐 수면 아래 가려져 있던 성추행, 성희롱 사례가 많았다는 얘기다. 이 연출가는 앞서 국립극단 직원을 성추행한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국립극단은 공론화를 원치 않는 피해자 의견에 따랐고, 2015년 이후 이 연출가를 극단 작품 제작에 참여시키지 않고 있다. 김수희 대표도 “그 당시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는 말로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이었음을 폭로했다. 공연계 한 스태프는 “심사위원 자리에 있거나 원로 등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성폭력을 목격하고도 현장에서 활동하는 한 가해자를 상대로 싸움 같은 건 할 수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며 연극계를 비롯한 공연계에서도 추가 폭로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앞서 연극배우 이명행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신이 과거 공연 스태프를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게재되자, 사실을 인정하고 출연 중인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하차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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