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것의 연기가 더 생생했다. JTBC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 출연한 신인배우 원진아(27)는 잔잔하게 진심을 연기했다. 극 중 하문수가 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 “이해가 너무 잘 돼서” 연기도 쉽게 풀렸다고 한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원진아는 “주연에 발탁됐을 땐 부담감에 잠도 못 잤고 경련이 일어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다”며 “막상 선배들을 만나 대사 맞춰보고 도움을 받다 보니 마음이 진정되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원진아는 2015년 단편영화 ‘캐치볼’로 데뷔한 후 주로 독립영화에 얼굴을 비쳤고 영화 ‘밀정’, ‘퇴마:무녀굴’, ‘섬, 사라진 사람들’ 등 상업영화로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지난 연말 개봉한 영화 ‘강철비’를 통해서다. 주인공 엄철우(정우성)을 따라 남한으로 넘어온 북한소녀 려민경 역으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는 12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됐다. 붕괴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지라 섬세한 감정 연기가 요구됐다. 원진아는 “연기력이 좋았다기보다 PD님이 원하는 인물의 감성이 있었던 것 같다”며 “1차 면접 때도 연기보다는 어떻게 살아왔고 요즘 하고 있는 고민은 무엇인지 등 내 실제 배경과 성격, 감정들을 물어보더라”고 말했다.
“얼굴 근육을 많이 사용하거나 제스처를 많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PD의 제안을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내 연기에 대한 감을 잡아갔다. 행동이나 얼굴 표정을 담백하게 해야 “대사가 주는 전달력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문수는 자신과 닮은 점도 많아” 감정이입을 하는 데도 수월했다. “극 중 엄마와의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게 딱 그 나이대의 고민들이거든요. 저도 사춘기 시절 큰 가정사도 아닌데, 하문수와 비슷한 우울함을 느낀 적이 있어요. 가족이 나에게 의지해서 서운하고 지치는 감정을 느꼈었거든요. 실제 사고 후유증을 앓은 사람의 감정을 따라 해도 될까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어 하문수를 저의 모습에 빗대 연기했던 것 같아요. 엄마와 싸우고 울고 하는 장면은 실제 원진아에게 있는 모습이기도 한 거죠.”
어린 시절 텔레비전 연기를 따라 해보며 연기에 관심을 가진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호기심에 연기학원을 찾아 두 달간 강의를 들으면서 꿈을 키우게 됐다. 그는 “학원에서 화를 내는 신을 연습할 때 진짜 화가 나면서 뻔뻔하게 연기가 되는데, 속이 후련해지더라”며 “그 때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연기가 하고 싶다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기의 길은 쉽지 않았다. 가정형편 때문에 연기에 도전하기 힘들었다. 동생들이 있어 자기 욕심만 내세울 수 없었다. 예고를 졸업한 친구들 사이에서 뒤늦게 연기를 하고자 3달간 입시 준비를 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일찌감치 꿈을 접고 보험회사 사무직 등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내던 어느 날 “집에 보탬이 안 되도 괜찮으니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부모님의 응원을 받았다. 2014년 원진아는 충남 천안에서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부모님은 너무 미안해 하세요. 이렇게 연기할 수 있는 애였는데, 그동안 앞길을 막은 것 같다고요. 그런데 간절함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들어진 제 모습이 오히려 이번 작품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제가 내내 연기학원에서 전문적으로 배웠다면, 지금 시청자가 칭찬해주시는, 현실감 넘치는 인물 같은 느낌이 났을까 싶어서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욕심이 많다. 지금이라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미 해봤던 연기도 다시 해보고 싶다. 원진아는 “일단 시간이 지나면 못 할 방황하는 청춘의 역할, 질풍노도의 섬세한 감정을 연기해보고 싶다”며 “나이에 비해 연기를 늦게 시작한 만큼 다른 데 눈길 돌리지 않고 성실히 오래 작품을 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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