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 1년차 간호사 투신 사망
연휴 직전 극심한 스트레스 호소
남친 “선배 간호사 괴롭힘에 자살”
“명목은 교육 실상은 인격모독
군대 군기보다 더한 게 태움”
병원 측 “직장 내 괴롭힘 없었다”
설 연휴 첫날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일하던 1년 차 간호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지인은 ‘신입 길들이기’가 원인이라고 주장,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10시 40분쯤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 화단에서 모 대형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A(27)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지난해 이 병원에 취직,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며 당일 휴가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병원 기숙사에서 지내온 A씨가 아무 연관이 없는 아파트에서 투신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로 유서가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경찰은 A씨가 죽기 직전 휴대폰에 관련 메모를 남긴 것을 확인하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특히 A씨 남자친구가 ‘선배 간호사의 괴롭힘 때문에 A가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함에 따라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다.
A씨 남자친구라고 밝힌 B씨는 간호사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려 "여자친구의 죽음이 그저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간호사 윗선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태움'이라는 것이 여자친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요소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태움’은 주로 대형병원에서 선배 간호사들이 신입을 가르치거나 길들이는 방식 중 하나로 ‘영혼이 재가 되도록 태운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용어다. 특정직업 특유의 규율문화인 동시에 일종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인다.
실제로 다수의 간호사들 역시 “명목은 교육이지만, 실상은 과도한 인격적 모독”이라거나 “태움 때문에 외국으로 이직하거나 심지어는 간호사를 그만두는 사람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간호학과 실습생 정모(22)씨는 “사실 군대 군기보다 더한 게 간호사 태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한 대형병원 간호사는 “환자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병원 특성상 조금의 잘못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가르치는 거라 소위 태움이라는 것은 그만큼 엄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연휴 직전인 13일 저녁 근무 중 중환자실 환자의 배액관(수술 후 뱃속에 고이는 피나 체액을 빼내는 관)이 망가지는 일이 발생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로 다음날인 14일 수간호사와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병원 측은 자체 조사 결과 A씨에 대한 태움 즉, 직장 내 괴롭힘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선을 그었다. 수간호사와의 면담 자리에서도 A씨를 문책하거나 책임을 돌리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게 병원측 설명이다. 병원 관계자는 "연휴가 끝나는 대로 보강 조사를 해 면밀하게 파악할 예정이지만 1차 조사 결과 유가족이나 남자친구가 주장하는 직장 내 괴롭힘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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