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생들에겐 경제적 부담
계약직은 내기만 하고 받긴 어려워
비혼 느는데 안 맞는 관습 지적도
비용부담 적고 직원끼리 상부상조
십시일반 문화 긍정적 시각도
“왜 매번 얼굴도 모르는 사람 축의금을 의무로 내야 하죠?” 화장품회사에 근무 중인 A씨는 3월을 앞두고 절로 한숨이 나온다. 각종 경조사가 몰리는 봄철이면 월급에서 ‘경조사비’ 명목으로 의무 공제되는 비용이 많게는 십수만원에 달하기 때문. A씨 회사는 직원 결혼이나 부모상의 경우 다른 직원들 임금에서 ‘2만원’씩 공제하고 있다. A씨는 “직원 수가 200여명에 달해 부담이 크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일부 회사에 남아있는 경조사비 공제 문화에 불만을 터뜨리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 대개는 직원 수가 적을 때 복지 차원에서 십시일반 갹출하던 문화가 회사 규모가 커진 이후에도 지속돼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비혼 인구가 늘고 경조사비가 허례허식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요즘에 걸맞지 않은 관습이라는 지적도 곁들여진다. 특히 수입이 적은 사회 초년생에게는 경조사비 자체가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B씨는 경조사비 의무 공제 문제로 회사와 갈등을 겪다 최근 한국노총에 상담을 요청했다. B씨 회사는 지난 20년간 직원 수가 50명에서 500명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 암묵적 관행으로 급여에서 환갑과 칠순을 비롯한 각종 관혼상제 경조사비를 공제해왔다. 이에 계약직 근로자들이 이의를 제기하자 회사는 그제야 직원 동의 여부를 묻는 ‘공제 동의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B씨는 “만일 공제에 동의 안 하면 기껏 남의 집안 행사에 돈 내오다 정작 본인은 그 혜택을 못 받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호소했다. B씨 같은 계약직 단기 근로자는 고용이 불안정해 경조사비를 내기만 하고 정작 되돌려 받는 혜택을 누리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고용노동부 관계자에 따르면 경조사비는 회사 내규에 따르기 때문에 근로계약서에 관련 내용을 명시해 근로자 동의를 받았다면 취업규칙에 위반되지 않는다. 만일 근로자 동의 없이 경조사비를 공제했다면 근로기준법 제43조를 위반한 것으로 ‘체불임금’ 명목으로 공제된 금액을 청구할 수 있지만, 괜히 목소리를 냈다가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하는 근로자 입장에선 이 역시 쉽지 않다.
이런 ‘십시일반’ 문화를 긍정하는 시각은 여전히 존재한다. 7년 차 직장인 김현우(35)씨는 “의무 비용을 정해놓지 않으면 친밀 정도에 따라 많게는 5만원, 10만원씩 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회사에서 일괄로 걷어가니 비용 부담이 적다”고 했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정혜미(28)씨는 “중요한 행사에 직원들끼리 돕자는 것이기에 결국 상부상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상혁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노무사는 “단체협약 없이 경조사비를 임금에서 공제했다면 명백한 위법”이라며 “경조사비 납부만 하고 혜택은 못 받는 기간제 근로자도 존재하는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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