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밀 타이거 투쟁자금 댄 13명 스위스서 재판
이젠 테러조직서 해재 불구, ‘뒤탈’은 현재진행형
선진국서 전문직 종사… 스리랑카군 파병 저지도
지난달 7일 스위스 연방 형사법원에선 스리랑카의 소수민족인 타밀족 출신 13명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 스위스 국적 12명과 독일 국적 1명인 이 피고인들은 스리랑카 내전 중인 1999~2009년 강제 모금한 1,500만프랑(173억원)을 돈세탁과 문서위조 수법으로 싱가포르, 두바이를 거쳐 반군 조직 ‘타밀엘람해방타이거(LTTE, 이하 타밀 타이거)’에 전달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현지 법원의 사건기록을 보면, 관련 사법절차는 사실상 스위스 연방공익부가 2009년 3월 문제의 자금 조사에 착수했을 때부터 시작됐다. 해당 문서에는 타밀 타이거가 ‘범죄조직’이며, 이들 13명에겐 ‘범죄조직 가담 혐의’가 있다고 적시돼 있다.
스위스 내 타밀족 단체인 ‘타밀운동’의 쿠루파란 쿠루사미 대표에 따르면 타밀 디아스포라(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스위스 당국의 감시가 시작된 건 2005년쯤이다. 다만 당시는 스리랑카 정부와 타밀 반군 간 평화협상이 진척되던 시기라 별다른 압박이 없었다.
그러다 2009년 3월 타밀 타이거의 패색이 짙어지자 수사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2016년부터는 ‘테러리스트 펀딩(자금조달)’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는 게 쿠루파란의 설명이다. 실제로 2016년 7월 20일자로 작성된 공소장에는 “테러조직으로 간주되는 타밀 타이거”라는 문구가 나온다.
문제는 2006년 타밀 타이거를 ‘테러조직’이라고 규정한 유럽연합(EU)과 달리, EU 비회원국인 스위스의 경우 이들을 테러조직이나 금지단체로 정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최소한 스위스에선 ‘테러리스트 펀딩’에 대한 법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얘기다. 쿠루파란이 “타밀 타이거는 (스리랑카 동북부에서) 사실상 정부 기능을 했고, 우리의 모금은 국가 건설을 위한 기부금이다”고 항변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물론 타밀 디아스포라가 반군 지원 문제로 수사대상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컨대 2011년 네덜란드 경찰은 타밀인 6명을 체포한 바 있다. 이들 중 네덜란드 국적 5명은 테러리스트 자금 조성에 가담한 혐의로 6개월을 복역한 반면, 노르웨이 국적자이자 타밀 타이거 핵심인물인 페리나야감 시바파란은 풀려났다. EU에 가입하지 않은 노르웨이가 타밀 타이거를 테러조직으로 공식화하지 않았다는 점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을 법하다.
이런 가운데 EU는 지난해 7월 타밀 타이거를 테러조직 명단에서 해제했다. “위협이 될 만한 어떤 정황 증거도 찾지 못했다”는 이유다. 그럼에도 ‘타밀 타이거’는 여전히 처벌의 구실이 되고 있고, 여기에 연계돼 있는 한 타밀 디아스포라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달 스위스 법정에 선 타밀인 13명은 단적인 사례다.
100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타밀 디아스포라는 스리랑카 내전의 도화선이 된 1983년 인종학살 전후 해외로 이주한 난민들이 상당수다. 2000년대 스리랑카 정부와 반군 간 평화협상을 중재했던 노르웨이 외교관 에릭 솔하임은 지난해 인도 방송매체 위온(WIO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타밀 디아스포라는 가장 성공적인 디아스포라다.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이 많고 자부심도 강하다. 이 자부심이 타밀 타이거의 큰 에너지였다.”
스리랑카 내전 26년(1983~2009년) 동안 타밀 반군의 투쟁 자금 대부분은 바로 타밀 디아스포라로부터 나왔다. 세계 여러 무장단체들이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는 특정 국가에 휘둘리는 것과 달리, 타밀 타이거가 독단적일 만큼 독립적이고 재정구조도 안정적이었던 것은 디아스포라의 활발한 지원 때문에 가능했다. 타밀 타이거의 연간 수입은 최소 2억~3억달러(2,166억~3,249억원), 최대 15억달러(1조 6,245억원) 수준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섬나라 정글에서 전쟁을 치르는 반군과, 부유한 나라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디아스포라 사이의 괴리감은 ‘독립국가에 대한 열망’으로 해소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자 반군’의 돈줄은 언젠가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이는 타밀 타이거가 국제사회에서 잇따라 ‘테러조직’으로 등극했던 것과 무관치 않다. 1997년 미국을 시작으로 영국(2000년)과 캐나다ㆍEU(2006년) 등에서 타밀 타이거는 테러조직으로 규정됐고, 해당 국가에 거주하는 타밀 디아스포라의 모금 활동에도 제약이 가해졌던 것이다. 스리랑카 내전은 2009년 반군의 패배로 끝났지만, 스위스 재판에서 보듯 그 뒤탈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타밀족의 ‘디아스포라 정치’는 세계의 분쟁지역들 중에서도 단연 조직적이면서 효율적인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이달 7일 유엔 평화유지군 동참을 위한 스리랑카군의 레바논 추가 파병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의 주요 타밀 조직들은 유엔에 ‘항의서신’을 보내면서 이에 반대하는 로비를 벌였다. 2004~2007년 스리랑카군이 아이티에서 유엔군으로 복무할 당시, 어린이 성매매 조직을 운영했던 전력이 우선 문제가 됐다.
게다가 파병부대 지휘관이 라뜨나풀리 와산따 쿠마라 헤와즈 중령이라는 점은 타밀 디아스포라의 격분을 샀다. 그는 스리랑카 내전 막바지 무렵, 정부군이 반군 수도였던 킬리노치에 대공세를 퍼부을 당시 인권침해로 악명 높았던 57사단의 일원이었다. 타밀족 학살이 자행된 마지막 전장, 푸뜨쿠리루푸(PTK) 지역 주둔 제14대대의 현장 지휘관이기도 했다. 이런 문제점들 때문인지 지난 18일로 예정됐던 스리랑카군 파병팀의 레바논 출국은 일단 보류됐다. 유엔도 이튿날인 19일 ‘스리랑카군 파병 재검토’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타밀 디아스포라의 정치력이 발휘됐다고 볼 만한 대목이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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