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깊은 은메달을 따낸 여자 컬링 대표팀은 어디를 가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25일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결승에서 스웨덴에 아깝게 무릎 꿇은 뒤 은메달을 목에 걸고 공식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할 때도 수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니며 “멋있어요” “너무 잘했어요”라고 격려해줬다. 은메달이 확정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시울을 붉혔던 선수들은 환한 미소와 함께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왔다.
스킵 김은정(28)은 “한국 컬링 역사상 올림픽에서 첫 메달을 따서 영광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힘든 일이 있었는데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이런 결과를 얻었다. 우리 팀을 밀어주고 이끌어주신 김경두 교수님(현 컬링훈련원장), 경북체육회 덕분에 역사를 쓸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힌 뒤 “결승 상대였던 스웨덴은 마지막까지 완벽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갈만한 샷을 보여줬다”고 상대를 인정했다.
김은정은 이름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도 들려줬다.
그는 “제 이름이 ‘김은정’이라 그런지 결승에서 진 적이 많아 ‘김금정’으로 개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했다. 그럴 때마다 큰 대회에서는 은메달만 따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오늘 지고 나니…”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톱 클래스 팀으로 올라가고 싶었는데 계속 떨어지고 떨어져 힘들었다. 그 때마다 ‘우리가 이렇게 흔들리는 건 더 큰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고 서로 다독이며 이겨냈다”고 털어놨다.
이번 올림픽에서 김은정과 김영미(27)는 ‘국민스타’가 됐다.
큰 안경을 낀 채 환상적인 샷을 성공하고도 무표정인 김은정이 특히 화제를 모았다. 그에게는 ‘빙판의 돌부처’ ‘안경선배’라는 별명이 붙었다. 김은정이 김영미에게 스위핑을 하라고 지시할 때 애타게 부르는 “여영~미이~”라는 말은 최고 유행어가 됐고 김영미는 ‘국민영미’라는 호칭을 얻었다.
그러나 이들은 올림픽에 집중하기 위해 휴대폰까지 반납해 유명세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김영미는 “감독님께 아직 휴대폰을 못 받아서 (인기는) 잘 모르는데 분위기가 처음과 확 달라지긴 했다”고 웃었다. 김은정도 “주변에서 쪽지도 쥐어주시고 선물도 주시더라. 인기나 그런 것보다는 한국 컬링을 지켜봐 주시는 분들에게 큰 행복을 드린 것 같아 기쁘다”고 전했다.
여자 컬링 대표 5명 중 4명은 의성여고 동문이다.
2006년 의성여고에 다니던 김영미가 친구 김은정과 함께 방과 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했고 김영미 동생 김경애(24)가 언니 물건을 건네주러 왔다가 얼결에 합류했다. 김경애 친구 김선영(25)이 들어오고 2015년에는 경기도의 고교 유망주 김초희(22)가 가세해 지금의 ‘팀 킴(Team Kim)’이 됐다.
컬링을 시작한 정확한 상황을 묻자 김영미는 “체육시간에 체험학습으로 컬링이 있었다. 은정이가 컬링을 계속 하고 싶어서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한 명 더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은정이가 저에게 쪽지로 ‘컬링 할래’라고 물어서 ’그래 하자’ 했던 게 시작이다”고 했다. 이어 “한 번은 클럽 대회가 있었는데 제가 물건을 집에 두고 와 동생에게 가져다 달라고 했다. 선생님이 동생에게 중등 클럽도 만든다고 하시며 친구 3명을 더 모집하라고 하셔서 동생이 3개 반을 돌아다니며 같이 할 친구를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컬링 역사를 새로 쓴 ‘팀 킴’은 이렇게 동화처럼 탄생했다.
강릉=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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