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수출 활로 모색 차원
산업부 산하 소규모로 편성
美는 고강도 무역공세 펼치는데
외교부 역할 지나친 배제 시각도
차관급 통상본부장 결정권 약해
“지금이라도 재편해야” 목소리
연일 수위를 높이는 미국의 통상 공세에 우리나라가 궁지에 몰리면서 문재인정부의 통상 조직 체계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진작부터 범정부 차원의 총력 대응 필요성이 지적됐음에도, 통상 조직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 소규모로 편성해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이제라도 통상조직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5일 통상 전문가들에 따르면, 문재인정부의 통상조직 체계는 상무부(산업부) 아래 통상 담당 부서를 둔 중국과 동일하다. 흔히 제조업 기반 국가는 수출 활로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통상을 지렛대로 활용하는데 방점을 찍는다. 산업부의 정책을 보조하고 유기적으로 협력하기 위해 그 산하에 통상 부서가 배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출범 이후 정부 조직개편에서 통상 부서 편성을 ▦산업부 산하 ▦외교부 산하 ▦별도 조직 출범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산업부 산하로 결정한 배경도 핵심 국정과제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산업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요구와 반덤핑 및 상계관세 부과 등 트럼프 정부의 대대적인 통상공세가 이미 예고됐던 상황에서 통상 분야를 제조업 육성의 보조 수단처럼 본 건 너무 안이한 판단이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 일본은 경제산업성(산업부) 산하에 통상 조직을 두긴 하지만 주요 통상 사안이 있을 경우 장관급의 별도 태스크포스(TF) 조직을 출범, 정부 차원에서 전폭적인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선언으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와해될 뻔 했지만 일본은 남은 10개 회원국들을 설득, 협의를 주도하면서 결국 살려냈다. TPP는 다음달 출범한다. 고준성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다시 TPP 복귀를 희망하고 있다”며 “일본이 미국과의 통상 경쟁에서 판정승을 거둔 셈”이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통상환경을 주도하는 미국은 장관급의 상무부(산업부)와 무역대표부(통상)를 별도 조직으로 운영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이라도 국내 통상조직 체계를 서둘러 재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종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대외적으론 ‘통상장관’ 직함을 사용하지만, 정부 직제는 차관급이다. 자연히 조직ㆍ예산 등에 대한 권한과 현안에 대한 결정권도 약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급증하는 통상현안 대응을 위해 인력 50명을 증원해달라”고 한 김 본부장의 요구는 4개월이 넘은 현재도 전혀 진척이 없는 상태다.
또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국내 농산물 시장 개방을 김 본부장은 “절대 넘을 수 없는 선인 ‘레드라인’”이라고 밝혔지만,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레드라인은 ‘블러핑’(엄포)일 수도 있다”고 말해 견해 차이를 내비치기도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공학도인 백 장관과 로펌 출신 김 본부장은 통상을 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 협상전략에서도 불협화음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미 통상분쟁에서 외교ㆍ안보와 통상을 분리해 대응한다는 문재인정부의 방침을 놓고는 외교부의 역할이 지나치게 배제됐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현재 진행 중인 한-이스라엘 FTA 협상의 경우 산업부는 자동차 수출 등 경제 논리를 바탕으로 조속한 타결을 밀어붙이고 있는 반면, 외교부는 유대인 정착촌을 이스라엘 원산지로 인정하면 팔레스타인의 반발 등 심각한 외교 문제가 비화될 수 있다며 막아서고 있는 중이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한-이스라엘 FTA 타결이 늦어지고 있는 건 경제보단 외교를 앞세운 우리 외교부의 기본적인 입장 때문”이라며 “하지만 한미 통상분쟁에선 외교부의 역할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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