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 QR코드 스캔 후 매장 입장
“첨단 쇼핑 체험하자” 입구에 긴 줄
#자동결제 위해 천장 백여대 카메라
물건 집어 나가면 5분 뒤 영수증이
#들었다 놓은 샐러드값 잘못 청구
앱에서 삭제하니 영수증 정정돼
#“일자리 킬러” “AI의 범위 확대”
두렵고도 설레는 우리의 미래
아마존고 앱을 찍고 나는 미래로 들어섰다. 미국 시애틀 7번가 아마존 본사 건물 1층의 식료품점 아마존고는 앱을 스캔한 순간부터 나의 존재를 인식했다. 사고 싶은 물건을 아무거나 집어들고, 계산 없이 그냥 나가면 그만인 이 쇼핑 경험은 빠르고 간편하고 경이로웠다. 뭔가 빠진 듯한(물론 결제과정이 빠졌다) 허전함이 발목을 잡았지만, 한가지는 확실했다. 이것이 곧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확신. 아마존고는 현존하는 미래다.
아마존이 직원 상대 실험을 거쳐 일반 대중에 문을 연 지 20일이 지난 12일에도 아마존고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계산대 앞에서 기다릴 필요 없이 ‘그냥 걸어나가라(Just Walk Out)’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이 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대기 줄은 들어가는 입구에 존재했다. 직원이 “앱 설치하셨나요?”라고 묻는다. “물론이죠.” 오기 직전 아마존고 앱을 다운받았을 때 10여년에 걸쳐 아마존에서 주문할 때 썼던 카드정보와 주소가 줄줄이 뜨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었다. 아마존은 나의 모든 것을 기억했다. 직원들은 앱이 없는 이들에게는 설치방법을 알려주고, 주황색 아마존고 쇼핑백도 나눠주고는 고객들을 들여보냈다.
“미래의 쇼핑 체험하자” 성소 된 점포
“휴대폰을 여기에 스캔하세요.” 유리문 안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출입구 앞에서 다른 직원의 안내가 또 이어진다. 앱을 켜고 QR코드를 스캔하니 문이 열린다. “일행이 있으신가요? 그럼 앱 찍고 일행분 먼저 들어가세요.” 앱이 없는 사람도 이렇게 일행의 앱을 이용해 들어갈 수 있지만 아무한테나 앱을 찍어줘선 안 된다. 그가 들고나간 상품 값이 고스란히 청구된다.
월요일 낮 시간인데도 약 170㎡의 매장 안에는 50여명의 손님들이 북적인다. 계산 없는 쇼핑에 이미 익숙한 듯 필요한 물건만 집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여성,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는 이들, 손님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빈 선반에 물건을 채우는 직원들이 분주히 오간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밀려들어온다. 매장 밖 거리에는 금방 쇼핑을 끝낸, 아마존고 쇼핑백을 든 관광객들이 셀카 촬영을 하고 있다. 아마존고는 현재 가장 핫한 첨단 IT의 성소인 것이 분명하다. 지금 아마존고는 식료품이 아니라, 미래의 쇼핑 경험 자체를 판매하는 중이다.
아마존은 아마존고를 식료품점(grocery)이라고 규정하지만, 편의점에 가깝다. 빵, 샌드위치, 샐러드, 스낵, 초콜릿, 요거트, 탄산음료, 우유, 맥주, 와인, 햄, 치즈, 라면 등 바로 먹을 수 있는 식품을 포함한 다양한 식음료를 구비하고 있다. 집에서 30분만에 요리해 먹을 수 있도록 모든 재료를 갖춰넣은 아마존 밀 키트도 판매한다. 단 무게를 재서 파는 채소나 정육은 없다. 한 옆에는 편의점처럼 음식을 데우고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고, 다른 쪽에는 직원들이 샐러드, 샌드위치 등을 만드는 조리공간이 있다. 삼각김밥부터 군고구마까지 있는 우리나라 편의점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구색일지 모르지만, 구매자들은 “샐러드 맛이 기가 막힌다” “가격이 합리적”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식사를 한 직후라 초콜릿과자와 음료수를 봉투에 넣었다. 스테이크 샐러드가 맛있어 보이지만 다시 선반에 내려놓는다. 선반에서 집어든 상품은 자동으로 앱 속 장바구니에 들어가고, 내려놓으면 다시 빠진다. 그런데 출구 앞에서 잠시 망설이게 된다. ‘진짜 그냥 나가도 되는 건가’라는 불안감, 괜한 죄책감이 든다. 물건을 슬쩍 집어 나가는 것만 같다. 확실히 ‘너무’ 간편하다. 심리학적으로는 결제의 고통을 체감하지 못할수록(가령 현금보다 카드로 결제할 때) 더 많은 돈을 쓰게 되는데, 일단은 낯선 무결제의 고통이 크다. 익숙해지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업계에선 자동결제 시스템이 더 많은 매출을 올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런데, 매장을 나선 후 얼마 안 돼 앱에 뜬 영수증에서 문제를 발견했다. 다시 되돌려 놓은 스테이크 샐러드가 청구돼 있다. 첨단 인공지능이라더니? 아마존고 직원에게 “이런 오류가 흔히 일어나느냐”고 물어보니, “아주 드물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는 “상품을 건드렸었나요?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나요?”라고 묻더니, “앱 영수증에서 상품 항목을 밀어 삭제를 누르세요. 그리고 삭제 이유를 그렇게 쓰면 돼요”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아마존고 고객서비스팀으로부터 사과와 함께 “스테이크 샐러드 청구를 수정하겠다”는 이메일이 도착했다. 1시간여 뒤에는 정정된 영수증이 이메일로 왔다. 아마존고의 고객 응대는 기술보다 완벽했다.
진격의 아마존고 ‘기술혁신 전쟁’ 개시
계산대를 없애고 자동결제를 가능케 한 아마존고의 기술은 컴퓨터 영상인식(Computer Vision), 복수의 감지 데이터를 종합하는 센서 퓨전, 알파고에서 그 위력을 실감한 인공지능 딥 러닝이다. “자율주행차에 적용되는 것과 같은 기술”이라고 아마존 측은 설명한다.
만약 상품에 전자태그를 부착하는 무선주파수인식(RFID) 기술을 활용한다면 청구 오류는 오히려 없을 것이다. 1990년대 RFID 기술이 등장할 때 계산대가 사라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은 달콤하고도 강렬했었다. 하지만 RFID는 고비용 기술이라 산업화가 어렵다. 1,000원짜리 물건을 파는 식료품점이라면 더더욱 경제성이 떨어진다.
아마존고는 앱을 찍고 매장에 들어온 고객들을 시각적으로 구별하고 동선을 추적하는 한편, 선반에서 사라진 물건의 무게를 감지해 종합적으로 누가 그 물건을 들고 갔는지를 판단한다. RFID보다 정확도가 떨어지고 수집 분석해야 할 데이터량이 훨씬 많다. 사람의 감각기관과 뇌가 상황을 판단하는 식이다. 운전자 대신 자동차 스스로 주행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현실을 사람처럼 종합적으로 감지, 판단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첨단 기술을 들고 진격하는 아마존은 오프라인 유통업계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지난해 식료품유통업체 홀푸즈를 인수한 이후 미국의 대형마트ㆍ슈퍼마켓 업체들은 ‘IT 첨병의 식품유통업 침공’에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을 도입하고 온라인 쇼핑업체를 인수하는 등 유통업체들의 숨가쁜 혁신은 IT업계를 방불케 한다. 미국 최대 슈퍼마켓 체인업체인 크로거는 최근 소비자들이 직접 스캐너를 들고 계산하고 나가는 ‘스캔, 백, 고(Scan, Bag, Go) 프로그램’을 전국 매장에 확대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장차 고객의 휴대폰과 연동할 수 있는 디지털 선반도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월마트는 이달 초 새로운 월마트 앱을 내놓았다. 계산대에서 스캔하면 바로 결제되고 영수증도 저장되는 월마트 페이 기능을 비롯해, 매장 내에서 상품을 찾고 상품평까지 볼 수 있는 검색기능 등이 포함돼 있다. 월마트는 1년여 전 아마존의 경쟁사인 젯닷컴을 인수했고, 크로거는 중국 최대의 온라인 쇼핑업체 알리바바와 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온/오프 쇼핑을 결합시키려는 시도도 빈번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언제 시작될지 모를 일이다.
식품유통업을 넘어 여행, 호텔, 식당 등 접객서비스 분야는 아마존고와 같은 무인 자동결제 기술이 쉽게 적용될 대상으로 꼽힌다. 단체여행객이 몰려온 호텔에서 피곤하게 줄 서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앱으로 예약해 체크인 없이 호텔방 문에서 스캔해 들어가고, 체크아웃 없이 호텔을 나가면 숙박료, 레스토랑, 객실 미니바, 룸서비스 등 이용금액이 자동으로 청구되는 게 얼마나 간편할 것인지.
기술 혁신의 물결은 전통적 서비스업조차 변신을 압박한다. 호텔여행업 전문 마케팅업체인 퍼즐파트너의 앨런 영 대표는 보도자료를 통해 “자동결제 시스템이 도입되면 서비스 종사자의 역할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소비자는 편의성도 추구하지만 개개인에 대한 맞춤 대면 서비스에 대한 욕구도 크다”며 “기술혁신의 과제는 어떻게 고객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직원의 역할을 바꿀 것인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미래, 혁신이라는 상품
자율주행차 이후 인공지능 산업화의 결실이 자동결제 시스템이 될 것인지 여부는 신기술에 투자한 만큼 인건비 절감 효과가 있느냐는 경제성과, 소비자들이 이를 좋아할 것이냐는 수용성에 달려있다. 최소한 소비자들은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아마존고 매장을 방문한 이들은 한결같이 “환상적이다” “쇼핑 자체가 즐거운 경험” “진정한 미래”라며 앞으로도 아마존고를 찾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는 설레는 동시에 두려운 것이다. 아마존고 매장을 구경하러 일부러 왔다는 고등학생 사만다는 “(계산하지 않고 나가는 것이) 너무 간편해서 오히려 싱겁다”는 소감과 함께 “그런데 모두 무인점포가 되면 일하는 직원들은 다 어떡하느냐”고 반문했다. 아닌 게 아니라, 아마존고 개장 후 미국 언론들은 2016년 계산원 종사자가 약 350만명, 그 중 식료품매장 계산원이 90만명에 달한다며 이들의 실직을 우려했다. 뉴욕포스트는 “아마존고가 미국인 면전에 일자리 죽이는 킬러를 들이밀다”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인공지능 자동결제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인지, 다시 말해 경제성을 충족해 널리 확산될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식료품 유통은 신선한 상품을 시시각각 채워넣고, 미성년자가 술을 사지 못하게 신분증을 검사하고, ‘이 할인쿠폰을 오늘 쓸 수 있느냐’는 문의에 응대하는 일들이 쉼 없이 발생하는 서비스업이다. 계산대가 사라진다고 완전한 무인점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내에서도 ‘곧 홀푸즈에도 자동결제 시스템이 도입될 것’ ‘식료품 매장이 첨단기술로 이익률을 높이기는 어렵다’는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마존고의 목적은 어쩌면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이미 얻어낸 바 있는, 개인들이 무엇을 먹고 마시고 사며, 무엇을 기준으로 그런 선택을 하며, 그 다음엔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데이터 자체에 방점이 찍힌 것인지도 모른다.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의 욕망을 나보다 먼저 읽어내는 인공지능이, 콩나물을 사러 식료품 매장에 들어선 나에게 마치 사려고 마음먹었을 것 같은 와인을 집어들라고 알려줄 날이 곧 오지 않을까. 그제서야 우리는 알아차릴 것이다. 인공지능과 데이터를 토대로 온라인 쇼핑을 장악한 아마존이 오프라인 쇼핑을 지배하게 된 단초가 바로 아마존고였음을.
아마존고는 ‘그런 세상이 수용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만으로 이미 성공적이다. 첨단 쇼핑을 만끽하는 사이 매장 천장에서 자신을 감시 추적하는 100여대의 카메라 센서를 의식하는 소비자는 없어 보인다. 소비자들은 아마존고에서 혁신의 아이콘을 볼 뿐이다. 나에 대한 감시와 추적을 대가로 한.
시애틀=김희원기자 h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