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가입자 절반만 육아휴직 써
“말 꺼내자마자 단칼 거절” 곳곳에
있는 휴가도 다 못쓰는 직장인들
마음은 굴뚝 같지만 여건이 안돼
#4년뒤엔 남편 출산휴가 10일로
육휴 6개월만 쓸땐 단축근로 1년
아내 이어 남편이 육아휴직 쓸땐
3개월간 月200만원까지 소득보장
공기업 연구원인 김성원(40ㆍ가명)씨는 지난 해 9월 20년 만에 처음으로 실내 스케이트장에 갔다. 평소엔 주말에도 피곤에 지쳐 ‘다음에 가자’고 미루던 김씨였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딸(7)이 조르자 선뜻 수락한 것이다. 육아휴직 덕이었다. 김씨는 26일 “지난해 육아휴직을 썼던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간 유치원 등하원부터 소풍까지 딸과 모든 시간을 함께했다”며 “그만큼 부쩍 가까워졌다”고 했다. 김씨도 육아휴직 결정이 마냥 쉽지는 않았지만 아내에 이어 두 번째로 휴직할 경우 3개월간 최대 월 150만원의 급여를 보장하는 ‘아빠의달’ 제도 덕에 부담을 덜었다고 했다.
국내에 육아휴직이 도입된 지 올해로 30년. 도입 첫해인 1988년 출산 여성들에게만 만 1세 미만 자녀에 대해 1년의 무급 육아휴직만 허용됐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부부 모두 초등학교 2학년 자녀에까지 일정한 소득을 보장받으며 쓸 수 있는 제도로 발전했다. 이보다 한참 먼저인 1953년 도입된 출산휴가도 여성에게만 60일 유급으로 주어졌지만, 지금은 여성에게는 90일, 남성에게는 3일(무급 포함 5일)의 유급 휴가로 발전했다.
앞으로의 변화 속도는 훨씬 더 빠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예고하고 있는 육아 대책이 손에 다 꼽기 버거울 정도다. 단지 육아 문제가 해소된다고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하기는 어렵고 여전히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부족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를 다 누릴 수 있는 이들이라면 상당한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어떻게 달라지는지 4년 뒤인 2022년 맞벌이를 하는 A씨 부부를 가정해보자. A씨 아내는 임신 4주차부터 출산휴가가 시작되는 예정일 약 1개월 전까지 매일 법정근로시간보다 2시간 줄어든 6시간만 일을 한다. 임신 12주 이전ㆍ36주 이후에만 허용되던 단축근로가 2020년부터 임신 전 기간으로 확대적용 되기 때문이다. 3일이던 배우자 출산휴가는 2022년 유급 10일로 늘어나면서 A씨는 초산인 아내 곁을 휴일을 포함해 2주간 넉넉히 지킨다. 이후 아내는 출산휴가를 마친 뒤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 약 10개월의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2019년부터 육아휴직 급여가 초기 3개월 이후에도 통상임금의 50%(최대 120만원)까지 보장되기 때문에 현재의 육아휴직자에 비해 약 200만원을 더 받게 된다(월 급여 200만원 기준). 육아휴직에 사용하지 않은 나머지 시간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에 활용하기로 했다. 육아휴직 기간 1년 중 실제 사용하고 남은 기간에만 허용됐던 단축근로는 2018년 하반기부터 남은 기간의 2배로 확대됐다. A씨 아내는 총 4개월간 활용이 가능한 것이다.
아내의 바통을 이어 A씨가 6개월간 육아휴직에 나섰다. 2018년 7월부터 두 번째 육아휴직자의 초반 3개월 급여보장액 상한이 15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오르는 등 소득대체율이 높아지면서 A씨 역시 현재보다 약 210만원을 더 받는다(월 급여 200만원 기준). A씨의 육아휴직이 끝난 뒤 부부는 아이를 부모님이나 보육기관에 맡기며 출근을 하지만 각자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이용해 아이를 돌본다. A씨가 육아휴직을 1년이 아닌 6개월만 사용한 건 단축근로 기간을 더 늘리기 위해서다. A씨는 남은 6개월의 두 배인 12개월간 육아기 단축근로를 사용할 수 있다. 또 아이가 아프거나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또는 학교 행사가 있을 때면 매년 10일씩 사용 가능한 자녀돌봄휴가(2018년 하반기 이후)를 이용해 아이의 곁을 지킬 수 있다. 단축근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렇게 되면 부부합산으로 지금이 2년3개월보다 9개월 가량 더 늘어난 3년 가량의 육아보장시간이 더 주어지는 셈이다. 두 아이를 낳는다면 부부가 육아에 6년 가량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공백은 지금보다 크게 줄어든다.
출산ㆍ육아 지원이 늘어나는 건 매우 반길 일이지만, 이런 제도적 혜택을 다 누릴 수 있는 이들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게 문제다. 현재도 법이 보장하고 있는 육아휴직과 출산휴가 등을 모두 사용하는 근로자는 공공기관과 대기업 직원 등 소수다. 2015년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16만2,000명 중 41%(6만6,420명)가 출산휴가를 쓰지 않았다. 육아휴직을 쓰지 못한 경우는 49%(7만9,380)로 절반에 가까웠다. 여전히 모성보호제도를 사용하려는 근로자들이 따가운 눈총을 받는 직장이 많다는 얘기다. 제조업분야 중소기업 직원 이모(39)씨는 “육아휴직을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사장에게 말을 꺼내자마자 단칼에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남편들 역시 육아휴직은 고사하고 출산휴가조차 제대로 다 못 쓰는 이들이 상당수다. 소규모 여행사 직원 김모(37)씨는 작년 말 첫 아이 출산 때 당일 하루밖에 휴가를 내지 못했다. 업무를 대신해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를 다 쓰겠다고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연차휴가조차 여름 휴가 시즌에야 겨우 5일 정도 쓰는 상황에서 출산휴가를 더 달라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김씨는 “곁에 있어달라는 아내의 요청을 들어주지 못해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며 “출산휴가가 열흘로 늘어나면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이 더 많을 것 같다”고 했다.
점점 더 벌어지는 이런 양극화는 결국 출산의 양극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비 등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현저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육아 지원까지 제대로 받지 못하면 그 격차가 더 벌어지는 건 당연하다. 박종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일ㆍ가정양립지원제도를 부담스러워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인력공백을 걱정하기 때문에 단순히 지원금을 늘린다고 해도 매력적인 유인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통계청의 ‘2017년 일가정양립지표조사’에서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 등을 도입한 385개 기업 중 47.3%(182개)가 ‘동료직원 업무량 증가’를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박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대체인력을 찾을 수 있도록 ‘대체인력뱅크’ 등의 시스템을 보완하고 모성보호제도에 대한 근로감독도 강화해야 균등하게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공동육아시설 등 기업에서 법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공적 시설 확충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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