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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영의 식물과 인간] 고향 생각이 나게 하는 느티나무

입력
2018.02.27 15:1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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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아낌없이 준다. 살아서 산소와 그늘과 과실을, 죽어서도 목재와 땔감을 준다. 그래서 나무에는 자연히 인간 삶의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오랜 산 나무일수록 인간과의 인연이 깊다. 고향 마을 동구 밖 노거수(老巨樹)는 수백 년 동안 마을을 지키며 동네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시골마을 입구의 거목은 대부분 느티나무다. 대개 수백 년, 더러 천년을 넘게 묵묵히 같은 자리를 지켜왔기에 온갖 사연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은행나무와 함께 오래 사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는 천년을 넘게 산 나무가 70여 그루인데 이 가운데 느티나무가 25그루나 된다. 수백 년 노거목은 소나무, 은행나무에 이어 세 번째지만, 지방자치단체가 보호수(保護樹)로 지정한 것은 느티나무가 가장 많다. 그만큼 사람과 가까운 나무다.

우리 조상들은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에 풍요를 주고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당산나무의 대부분이 바로 느티나무다. 한 조사에 따르면 80%를 넘는다고 한다. 설날이나 정월 대보름에 이 당산나무 아래서 마을 사람들은 건강과 장수, 풍년을 기원하고 재앙과 병을 피하기 위해 마을 굿을 하거나 당산제(堂山祭)를 올렸다. 정성스런 치성으로 아들 낳기를 비는 아낙네들도 많았다. 민간 신앙에서는 당산나무 여기저기에 5색(오방색) 천을 매달아 신들이 타고 내려올 수 있게 하거나 한지(韓紙)를 꽃처럼 접어서 매달거나, 소망을 적은 발문(跋文)을 새끼줄에 끼워놓고 소원을 빌었다.

전통 농경사회에서 느티나무는 한 해 농사를 점치는 나무이기도 했다. 봄에 잎이 피는 모습으로 풍흉을 점쳤다. 잎이 한꺼번에 많이 피면 풍년,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여겼다. 밤에 광채를 띠면 동네에 좋은 일이 생긴다 하여 ‘느티나무’,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나무가 먼저 울어서 ‘운나무’라고 불렀다고 한다.

느티나무 목재는 색상이 아름답고 단단하다. 워낙 굵은 데다 건조 과정에서 트거나 갈라지는 일이 드물다. 바로 흔히 말하는 괴목(槐木)이다. 조선 시대양반은 느티나무로 지은 집에 느티나무 가구를 놓고 살다가 느티나무 관(棺)에 실려 저승으로 갔다. 목재 국보와 보물, 문화재의 세포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라 경주 천마총이나 가야고분에서 나온 관(棺), 부석사 무량수전,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보관 건물인 법보전, 사찰 대웅전과 고궁의 기둥, 구시(큰 나무 밥통)가 모두 느티나무였다. 일상생활 용품이었던 장롱과 뒤주, 궤짝, 사방탁자 등도 대부분 그랬다.

지난 2000년 산림청은 새천년을 맞는 ‘밀레니엄 나무’로 느티나무를 선정했다. 우리 민족과 인고(忍苦)의 세월을 함께 해온 느티나무에 미래의 번영과 발전, 희망과 용기를 기약하려는 뜻이었을 게다.

느티나무는 공해에 약해 도시에서는 제대로 자라기 쉽지 않다. 더러 가로수로 심어진 것도 보이는데, 옆으로 가지가 넓게 퍼져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 주는 본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낯설다.

정구영 식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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