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66) 연극연출가의 상습적인 성추행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폭로가 이어져 비판을 받고 있는 김소희(48) 극단 연희단거리패 대표가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부교수에 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미투(#MeTooㆍ나도 당했다)’ 후폭풍이 거세 임용되자마자 퇴출 위기에 놓였다.
1일 홍익대 관계자에 따르면 김 대표는 이 학교 교수초빙 절차에 따라 전임교원으로 임용됐다. 그러나 임용 절차 중 이윤택 연출가에 대한 ‘미투(#MeTooㆍ나도 당했다)’ 폭로가 이어지면서 홍익대는 김 대표를 이번 학기 강의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홍익대 안팎에서는 김 대표의 교수 임용이 사실상 확정된 이후 이윤택 연출가에 대한 미투 폭로가 이어지며 임용 취소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홍익대 홈페이지에 게시된 2018학년도 1학기 전임ㆍ비전임 교수 임용 절차를 보면, 지난해 10월 31일 인터넷 지원을 시작으로 채용과정이 진행됐다. 11월 중 1차 심사 합격자를 발표하고 이후 임용지원서와 실적물을 바탕으로 한 2차 심사가 이어졌다. 면접심사인 3차 심사는 지난해 12월말부터 올해 2월 초까지 진행됐다. 홍익대 ‘전체교수회의’ 책자에는 지난달 14일 기준으로 신규 임용 전임교원 명단에 김 대표의 이름이 이미 올라 있다. 이윤택 연출가에 대한 미투 폭로가 시작된 날이다.
홍익대 관계자는 “신규 교수 채용은 성적과 인성 등 꼼꼼한 체크 과정을 거치는데, 이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훌륭하고 교수로 모실 만한 분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만약 큰 성추행을 알고도 일부러 조작이나 묵인했다면 교수로서 품위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지만, 아직 이를 단정할 수는 없다”며 “성폭력 방조가 사실로 확인되면 교원에 대한 징계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재로서는 수업 배제가 최선이라는 의미다.
김 대표는 성폭력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달 19일 “(이윤택 연출가가) 안마나 발성 등을 코치하면서 신체적 접촉을 하는 건 알고 있었고, 사과를 요구해 받기도 했다”고 말하며 경찰 수사 의뢰 등 더 적극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연희단거리패 전 단원이었던 홍선주 극단 끼리프로젝트 대표가 방송 인터뷰에서 김 대표가 “안마를 조력자처럼 시켰다”며 사실상 그의 방조를 폭로해 논란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교수의 지위를 이용해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잇달아 제기된 상황에서 성폭력 조력자 또는 방조자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 대표 임용은 대학가 미투 불길을 더 거세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알려지기 전에야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다르다”거나 “이 일이 터졌는데도 교수로 임용하는 것은 안 된다”와 같은 여론이 형성돼 있다.
절대 권력을 지닌 교수와 이들을 중심으로 한 위계 구조가 공고한 대학가는 미투 폭로의 또 다른 중심이다. 오태석 극단 목화 대표, 배병우 사진작가, 김석만 연극연출가, 배우 조민기ㆍ김태훈 씨 등이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들을 성추행 사실이 최근 미투 폭로를 통해 잇달아 수면위로 떠올랐다.
김태훈 교수 등을 비롯해 학과 교수 두 명이 성추행과 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된 세종대 영화예술학과의 교수진이 지난달 28일 직접 입장문을 내는 등 대학가의 성폭력 추방 운동도 본격화할 기세다.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들은 대학 측에 김 교수에게 최고 수위의 징계조치를 내릴 것을 요구하는 한 편 이번 학기부터 그를 강의에서 배제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임용이 끝난 박병수 겸임교수에게는 공식적인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김석만 연극연출가, 박재동 화백, 김광림 극작가 등 전ㆍ현직 교수들이 잇따라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이와 관련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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