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안전ㆍ주차난 가중치 확대
재건축 문턱 낮추기에도 불구
비강남권 주민들은 강력 반발
“정권 퇴진ㆍ낙선운동 펼칠 것”
전문가는 속도조절ㆍ방향전환 주문
정부가 강화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5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서울 비(非)강남 재건축 추진 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속도전을 막기 위해서는 시행을 늦출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는 아이까지 업고 항의 집회에 나선 비강남 주민들을 무마하기 위해 주차 공간이 턱 없이 부족하거나 소방차 진입도 힘든 곳은 재건축 가능성을 높여주는 절충안도 내놨다. 그러나 주민들 분노는 '낙선운동 카드'로 옮겨 붙는 형국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주민 1,000여명(주최측 추산)은 3일 오목교역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철회를 요구했다. 이날 집회에는 아이를 업은 부모들이 “안전한 아파트에 살고 싶어요”라고 쓰여진 티셔츠를 함께 입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내진설계가 안 된 목동 신시가지 재건축 대상 아파트가 모래 지형 위에 지어진 점을 강조하는 문구였다. 현장에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을 컬링 국가대표팀에 비유, “팀 킴(Team Kim)? 팀 킬(Team kill)! 민주당 아웃”이라고 성토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여당 국회의원들도 주민들의 편에 섰다. 친문 성향으로 분류되는 더불어민주당의 황희 의원(서울 양천갑)은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조치는 ‘공정’을 중시하는 새 정부의 국가운영 철학에 어긋난다”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공개 항의했다. 황 의원은 노원ㆍ마포ㆍ강서 지역의 여당 국회의원들과 만나 공동 대응 등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국토부는 ‘안전진단 정상화 방안’이 10일 간의 행정예고를 거친 만큼 5일부터 시행한다고 4일 밝혔다. 새로 적용되는 안전진단 강화 조항은 ▦조건부 재건축 판정 시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 ▦구조안전성 가중치 상향(0.20→0.50) 및 주거환경 가중치 하향(0.40→0.15) 조정이 골자다. 이에 따라 5일 이후 안전진단기관에 안전진단을 의뢰하는 재건축 단지는 강화된 기준을 적용 받게 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일부 재건축 주민들이 1년 적용 유예를 요청했지만 제도 개선은 안전진단의 본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조치인 만큼 예정대로 정책을 시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국토부는 소방 활동과 주차 문제에 대한 가중치를 원안보다 일부 상향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재건축 평가항목 중 전체의 15%를 차지하게 될 주거환경 분야에서 ‘소방활동 용이성’ 항목을 기존 0.175에서 0.25로, ‘세대 당 주차대수’ 항목을 0.20에서 0.25로 각각 올리는 것이다. 이어 세대당 주차대수도 현행 기준 주차대수의 40% 미만인 경우에만 최하등급(E)을 주기로 한 것을 60% 미만으로 조정했다. 정부 관계자는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여권 표밭인 비강남 주민들의 이탈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 국토부가 일부 요구 조항을 수용한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서울 양천ㆍ노원ㆍ마포ㆍ강동구 재건축 단지 주민들의 협의체인 비강남권 차별 저지 국민연대는 강력 반발했다. 국민연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평가 틀은 전혀 바꾸지 않은 채 15%로 낮춰 버린 주거환경 가중치 안의 소수점만 조금 올리면 주민들이 ‘고맙다’고 할 줄 알았느냐”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정책에 대한 분노를 정권 퇴진 및 낙선 운동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속도 조절과 방향 전환을 주문하고 나섰다. 권일 부동산인포 팀장은 “이제라도 정부가 강남과 관련된 재건축 조항만 촘촘히 짜는 방식으로 분리 대응하고 비강남에 대해선 재건축 가능성을 좀 더 열어줘야 한다”며 “주민과 정책 전문가가 모두 참여하는 회의체를 구성, 차분히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손재영 건국대 교수는 “정부의 절충안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정부가 절차적 잘못을 인정하고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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