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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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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입력
2018.03.05 19:0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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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스포츠 해설을 듣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말.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 요기 베라(Yogi Berra)가 남긴 명언이다. ‘결과는 아무도 모르니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뜻으로, 마지막까지 열심히 노력하자는 교훈을 준다.

비슷한 한자 성어로 개관사정(蓋棺事定)이란 말이 있다. 모름지기 일이란 그 사람의 관을 덮어야 비로소 결정(판정)된다는 뜻으로, 사람이 생을 마감한 뒤라야 그 사람의 정확한 시비선악(是非善惡)을 평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시성(詩聖)이라 불리는 시인 두보(杜甫)가 쓰촨성(四川省)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을 때 그곳에서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친구 아들 소혜(蘇傒)를 격려하기 위해 편지 형식으로 쓴 시 중에 나오는 말이다. 이런 격려 덕일까. 소혜는 훗날 유세객으로 이름을 떨쳤다.

나는 예전부터 이 두 문장(‘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와 ‘개관사정’)을 ‘지금은 비록 미약하지만 굴하지 말고 노력해서 마지막에는 좋은 성과를 이루도록 하자’는 미래지향적인 말로 이해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식으로 이 문장들을 이해하게 됐다.

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내고, 수많은 이들로부터 존경과 숭모의 대상이 된 대가(大家)가 과거에 저지른 추행으로 인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평소 그를 존경하던 이들은 낭패감과 배신감에 어쩔 줄 몰라 한다. 그 대가의 끔찍한 이면(裏面)을 보고는 ‘정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라며 혀를 찬다. 워낙 큰 성과를 이뤄낸 사람들이기에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없애기도 쉽지 않다. 최고 절정에서의 추락이라 그 추락의 속도는 무시무시하고 충격은 치명적이다.

그들 중 과연 단 한 명이라도 이런 추락을 예상이나 했을까. 예상했다면 그런 일을 저지르지도 않았으리라. 결국 지난 몇 십년 간 이뤄낸 그의 성과는 오명(汚名)의 추악함을 더 짙게 하는 소도구로 기능할 뿐이다.

화려한 성공이 타인의 아픔에 스스로를 둔감하도록 만들었을까. 언제부턴가 내가 일궈낸 성취에 도취돼 사람들이 보내는 갈채 위에서 마구 권력을 휘둘렀는데, 그 만용의 부메랑이 인생 후반기에 본인에게 정면으로 타격을 주는 형국이다.

세상살이는 만만치 않다. 대단히 미묘하고 힘들다. 내 본의와 상관 없이 선의를 갖고 임해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본인이 생각해도 명백한 악행을 저지른다면 그 결말이 어찌 무섭지 않겠는가.

“죄를 지어도 죄의 업이 아직 익기 전에는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꿀같이 여기다가 그 죄가 익을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큰 재앙을 받는다.”(過罪未熟 愚以怡淡 至其熟時 自受大罪ㆍ과죄미숙 우이이담 지기숙시 자수대죄)

‘법구경’(法句經)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이다. 악행에는 언제나 달콤함이 스며들어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리석은 인간들에게는 피하기 힘든 절묘한 덫이다. 악행으로 인한 죄는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숙성 기간이 필요하다. 그 숙성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재앙의 파괴력은 크다. 마치 깊이 묻어놓은 폭탄의 파괴력이 더 크듯이.

지금 당장 성공으로 인한 영광을 누린다 해도 나의 잘못된 행동 하나가 세상에 씨처럼 뿌려지면 언젠가 그 씨가 나를 파멸로 이끌 수 있다. 지금 당장 별다른 불리함이 없다고 자만하기 쉽다. 하지만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말처럼 ‘하늘 그물은 크고 커서 성긴 듯 하지만 결코 빠뜨리는 법이 없다(天網恢恢 疎而不漏ㆍ천망회회 소이불루).’ 이 세상을 떠날 때 내가 남기는 이름이 어떨지를 진정으로 고민한다면 어찌 하루를 허투루 살겠는가. 정말이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끝날 때까지 조심하며 살라는 경고의 의미가 훨씬 크게 다가온다.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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