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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 붙은 ‘떠나라’에 상처…” 영국 등지는 EU 출신 의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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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 붙은 ‘떠나라’에 상처…” 영국 등지는 EU 출신 의료진

입력
2018.03.06 17:3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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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현실화 땐 신분 제약

NHS 인력 부족 심화… 한계 보여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제 영국인들은 단순한 환자가 아닌 제 이웃이지만 제가 언제까지 여기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도 사람인지라 내가 정말 이곳에 필요한 인력인지 자문하게 되네요.”

영국의 대표적 복지 체계인 국가보건서비스(NHS)에서 근무하는 독일인 안드레아스 헤르푸르트(53)는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앞둔 심정을 이 같이 밝혔다. 영국 시민권을 취득한 적이 없는 그는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같은 유럽연합(EU) 시민권자에서 제약이 많은 이민자로 신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5일(현지시간) WP는 브렉시트 시한을 앞두고 이탈 우려가 커지고 있는 EU 회원국 출신 의사ㆍ간호사들의 사연을 전했다. 파운드화 약세와 반이민 정서에 ‘탈 EU’ 가능성이 커지면서 영국의 자랑이던 NHS가 만성 인력 부족 심화로 한계를 드러내는 모양새다.

영국은 1948년부터 보편적 무료 의료 서비스인 NHS를 운영해 왔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 긴축 기조가 이어지면서 재정 압박이 커졌다. 이에 따라 NHS 일자리의 상당 부분을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임금을 감내할 수 있는 EU 회원국 출신 의료 인력이 메워 왔다. 영국 의회에 따르면 NHS 종사자 중 12.5%인 13만9,000명이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 출신이다. 특히 의사의 10%, 간호사의 7%가 유럽 국가 출신이다.

이들 가운데 10명 중 4명은 브렉시트 투표 이후 영국을 떠날 의사를 갖고 있다. 지난해 11월 영국 의료협회(BMA)가 영국에서 일하는 유럽경제지역(EEA) 출신 의사 1,72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5%가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영국을 떠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들 중 39%는 이미 이주 계획도 마련한 상태다. 5명 중 1명꼴로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집을 팔았다. 영국 일반의학위원회(GMC)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은 호주나 뉴질랜드, 캐나다로 향한다.

WP는 특히 영국 내 강해진 반이민 정서로 의료진이 감정적으로 충격을 받아 NHS의 인력 이탈을 부추긴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NHS는 위기 수준의 인력 부족 상황에 직면해 있고 영국 국민이 할 수도 없고 하려고도 하지 않는 업무를 유럽인에게 의존해 해결하고 있다”며 “브렉시트가 (영국인들의) 격한 감정으로 결정됐듯 NHS의 몇몇 유럽 의사와 간호사들도 감정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묘사했다. NHS 소속 심리학자로 고국행을 결심한 독일인 다니엘라 슐츠헤닝(43)은 WP와의 인터뷰에서 “퇴근할 때마다 ‘떠나라’고 쓰인 포스터가 창문에 붙은 모습을 보는 게 고통스러웠다”며 “이 포스터를 붙인 내 이웃 같은 사람들이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b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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