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콘퍼런스’ 통해 경험담 공유
융자 못 갚아도 7년 뒤엔 기록 삭제
정부는 매년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기술(IT)전문 로펌 테크앤로에 따르면 2016년8월부터 1년 간 투자를 받은 전 세계 스타트업 중 누적 투자액 상위 100대 업체에 한국 스타트업은 단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두고 한국 스타트업의 성장과 해외 진출 등을 돕고 있는 이그나이트액셀(XL)의 클레어 장 대표는 “실패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선 스타트업이 회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은행 융자를 받은 뒤 갚지 못해 파산신고를 해도 7년 뒤면 파산 기록이 없어진다”며 “투자자들도 스타트업의 80%는 망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투자하는 등 실패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강조했다.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제시하고 실패조차 성공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실리콘밸리의 원동력이란 이야기다. 그는 “실리콘밸리는 창업에 실패한 경험도 향후 새로운 도전을 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기고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며 “서로의 실패 사례를 공유하고 배울 수 있도록 ‘실패 컨퍼런스’도 열린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VC) 업계 내에서는 ‘실패해보지 않는 사람에겐 투자하지 않는다’는 말도 나올 정도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투자를 받기 위한 벽도 높고 실패에 대한 부담도 크다. 7일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기술신용대출(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대출)에서 담보와 보증을 요구하는 비율은 지난해 71.7%를 기록, 2년전(59.8%)보다 오히려 12%포인트나 높아졌다. ‘벤처캐피털’을 단어 그대로 ‘모험자본’으로 인식해 담보 없이 회사 지분만 받는 미국과는 큰 차이가 있다.
공공부문 벤처투자 출자액(39.6%) 중 모태펀드가 65.7%에 달할 만큼 정부 자금 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문제다. 음재훈 트랜스링크캐피털 대표는 “미국에서도 국무성 등에서 운영하는 VC 펀드가 있지만 전체의 0.01% 수준”이라고 말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국내 VC는 정부자금을 바탕으로 투자하다 보니 손실을 입으면 안 된다는 부담감에 스타트업보다는 주로 창업 3,4년이 지나 안정된 곳에 투자한다”며 “정작 도움이 필요한 스타트업은 자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리콘밸리=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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