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당 1만원 남짓에 즐겨
금연 구역으로 환경도 쾌적
5년 전 대기업에서 은퇴한 장모(65)씨는 올 들어 일주일에 한 번씩 옛 회사동료들과 종로구 ‘젊음의 거리’ 일대 당구장을 찾는다. 장씨 일행이 모이는 시간은 주로 ‘경로우대’ 요금이 적용되는 오후 2~5시. 정상요금(10분당 1,700원)에서 30%정도 할인된 금액(1,200원)만 내면 되고, 당구대도 넉넉해 은퇴자에겐 안성맞춤 시간대라고 한다. 장씨는 11일 “여럿이 저렴하게 여가를 즐길 수 있다는 게 당구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했다.
은퇴 노년층이 싸늘하게 비어있던 평일 대낮 당구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젊은 시절 당구를 경험해 본 이들이 사회서 은퇴해 ‘현역’들이 업무에 열중하고 있을 오후 시간대 당구장을 채우면서다. 노년층이 당구장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가성비’. 몇 명이 모이든 시간 당 1만원 남짓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데다, 커피 등 음료도 무한제공돼 만족도가 높은 편이란다. 바둑이나 게이트볼로 대표된 노년층 여가스포츠가 다양화하는 모습이다.
한층 쾌적해진 당구장 환경도 은퇴층을 끌어들인다. 지난해 12월 당구장·스크린골프장 등 실내 체육시설을 금연구역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은 개정 국민건강증진법이 시행되면서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다 지난달 정년퇴직 한 이모(65)씨는 “담배 연기에 찌들었던 당구장 특유의 매캐함도 사라진데다, 미세먼지로부터도 자유롭다”면서 “시설도, 손님 매너도 당구장을 처음 찾은 40여 년 전보다 크게 발전한 것 같다”고 했다.
시내 중심가 당구장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노년층 모시기’ 경쟁이 붙었다. 지난해까지 종로나 강남 일대 일부만 시행하던 ‘경로우대’는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명동서 당구장을 운영하는 엄태긍(64)씨는 “당구는 경기하는 동안 많이 걷게 돼 운동량도 많고, 전략과 계산이 더해져 치매예방에도 좋다”며 “경로우대로 노인은 부담 없이 여가를 즐기고, 주인 입장에선 수익이 늘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라고 했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소득이나 재산수준이 다른 만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민영 여가 시설과 협약을 맺어 할인 혜택을 넓히거나 문화복지카드(문화바우처) 사용처를 당구장 등으로 확대해 저소득층을 포함, 다양한 노년층이 여가를 즐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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