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모를 불상사 막자”
뒤풀이 단골 노래방 찬바람
팀 단위 야유회ㆍ워크숍 줄며
수도권 숙박업소도 된서리
서울 종로구에서 10년 넘게 노래방을 운영했다는 A(67)씨는 요즘 폐업을 고민 중이다. 회식 또는 술자리 뒤 “2차!”를 외치며 찾아왔던 직장인 발길이 최근 뚝 끊겨 월세조차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A씨는 12일 “최근엔 ‘미투(#Me too)’ 열풍을 인식한 탓인지 더 피하는 느낌”이라며 “업계에선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도심 곳곳 노래방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뜻하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로 일찍 귀가하는 문화가 확산된데다, 미투 운동이 한창이라 혹시 모를 사고나 오해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노래방을 아예 찾지 않는 분위기가 더해졌다. 노래방 주인 이모씨는 “회식 후 뒤풀이를 주도하던 직장 상사들조차 ‘조기 귀가’ 대열에 합류하면서 손님이 더 줄었다”라면서 “상사 노래 취향에 맞춰 탬버린을 흔들던 부하 직원 모습은 머지않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 취급 받을 것”이라고 했다.
야유회나 워크숍 장소로 인기 많던 수도권 숙박업소 사정도 마찬가지. 봄만 되면 부서나 팀 단위로 휴일을 할애해 떠나던 워크숍이 대폭 간소화하면서 주말 손님이 크게 줄고 있다고 한다. 인천 강화도에서 단체 전문 펜션을 운영하는 김수임씨는 “지난해 이맘때면 꽉 찼을 3, 4월 주말 예약장부가 올해는 절반 정도만 찼다”며 “1박2일 워크숍이 갈수록 줄어드는 탓”이라고 했다. 공연관람 후 맥주 한 잔 하는 식이거나, 굳이 야유회를 떠나도 평일 당일치기 문화가 정착되면서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다수가 불편해 하는 행사는 줄이거나 없애려는 기업 및 공공기관 움직임도 있다.
직장 동료와 노래방 또는 워크숍을 가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영상콘텐츠 유통업체 임원 이승무(45)씨는 “올해 워크숍은 평일 사내 체육대회로 대체하기로 했다”라면서 “고위층 인식부터가 바뀌고 있어, 회식 때 노래방을 가거나 멀리 워크숍을 떠나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신규 직원과 가까워지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등의 순기능까지 사라질 것 같다”고 아쉬워하는 얘기도 들린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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