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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 작업환경 탓이라면… 태아도 산재 인정?

입력
2018.03.13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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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료원 임신 간호사 15명 중

5명 유산ㆍ4명 심장질환아기 출산

“유해 약품 취급 탓” 산재 소송

1심 업무상 재해, 2심서 뒤집혀

“병원의 높은 업무 강도와 유해한 약품 취급으로 태아에게 병이 생겼으니 아이에게도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제주의료원 간호사 A씨)

“태아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의 업무상 재해의 적용 대상인 근로자가 아니다.”(근로복지공단)

임신한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가 발생해 태아가 병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이 아이에게도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줘야 할까. 고용노동부는 올해 중 ‘임신 중 태아의 건강손상에 대한 산재보상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이 결과를 토대로 입법 발의를 추진할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현행 산재보험법은 근로자가 임신 중 업무상 유해요소로 인해 유산한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만, 태아가 미숙아나 선천성 질환을 가진 채 태어난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 업무상 재해를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 본인의 부상ㆍ질병ㆍ장해ㆍ사망’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처음 수면 위로 제기된 것은 2009년 제주의료원 간호사 중 15명이 임신했다가 5명이 유산하고, 출산한 10명도 4명의 아이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채로 태어나면서다. 해당 간호사들은 과중한 업무와 유해한 약품 분쇄작업 등이 유산의 원인이라면서 2012년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재해 요양비 지급을 신청했다. 그러나 공단 측은 병을 가진 아이는 산재보험법 적용을 받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거부했고, 법정 공방으로까지 번졌다. 1심 법원은 업무로 인한 태아의 건강손상도 업무상 재해라고 판단했으나, 항소심 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산재보험법 상 수급자는 근로자 본인이고, 태아는 모체와 분리된 이상 독립된 인격체로 봐야 한다는 것이 항소심 판단의 골자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 현행법은 유산만 산재로 인정

선천성 질환ㆍ미숙아는 제외

고용부, 올해 중 연구용역 실시

태아 산재 보상 방안 입법 추진

9년째 논란이 계속되는 사이 여성 근로자들의 ‘모성권’은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임신한 근로자들의 연간 유산율은 2012년 19.7%(6만9,644건)에서 2015년 24.5%(7만1,104건)로 꾸준히 높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임신 관련 업무상 재해 신청은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신청한 8건 이후 단 한 건도 없었다. 직장 생활 도중 유산을 하더라도 법에 보장된 유산ㆍ사산휴가 등을 쓰는 여성도 드물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유산ㆍ사산휴가 급여 수급자는 2012년 281명, 2013년 336명, 2014년 490명, 2015년 669명 등으로 집계됐다. 전체 유산 근로자의 1%도 안 되는 수치다.

현장에서는 하루빨리 산재보험법을 개정해 태어난 아이의 건강손상에도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장은 “임부와 태아는 하나로 묶인 단일체로 임신 근로자에게 발생한 태아의 장애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것이 상식이자 도덕”이라고 주장했다.

고용부도 법 개정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긴 하지만 구체적 방향에 대해서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주평식 고용부 산재보상정책과장은 “쟁점은 태아가 산재보험법상 수급권을 가지는가로 별도 입법 규정의 필요성에는 동의한다”며 “다른 업무상 재해와의 입법 체계를 맞추기 위해서는 보험급여의 범위, 지급요건 등에 대한 규정뿐 아니라 입증책임 완화를 위해 업무 관련성 판단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태아에 대한 산재보상을 인정하는 독일의 경우에도 업무 관련성 입증 문제로 실제 업무상 재해 인정 사례는 많지 않다는 설명이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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