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슬릭 인터뷰
래퍼 슬릭은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라 불린다. 스스로 자처한 별칭으로, 랩을 통해 여성을 이야기 하는 페미니즘 래퍼를 표방한다. 한국일보 영상채널 ‘프란’은 슬릭이 경험한 한국에서 여성 래퍼로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들어봤다.
- 2016년 한 힙합 공연 영상에서 스스로를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했다. 어떤 의미인가?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라는 표현은 페미니스트로서 ‘그래 나 지옥에서 왔다 어쩔래?’ 이런 느낌으로 던진 선언이었다.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마음을 강하게 붙잡아야 하기에 그런 표현을 썼다. 나의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워야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쓰고, 생각을 하는 것이 분명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라는 표현이 외부에서 나를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방어막이 된 것 같아서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
-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마주하게 된 계기는?
2015년 메르스 사태가 일어나고 이후 페미니즘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페미니즘 의 존재를 알게 됐다. 페미니즘이 어떤 건지 알아보기 시작하다가 페미니즘 책 중 한 권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몰랐거나 혹은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사회적 성차별을 마주했다. 내가 마주한 페미니즘은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이야기였고 이후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 국내 힙합씬 내에 성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나?
한국에서 여성 래퍼가 어떻게 소비되는지, 여성 래퍼의 노래가 나왔을 때 음악으로 소비되는지, 외모로 소비되는지는 인터넷 댓글만 봐도 알 수 있다. ‘언프리티 랩스타’를 보면 일단 제목부터 ‘언프리티’ 랩스타다. 그리고 그 방송엔 여성 래퍼들만 나온다. 그것만 봐도 국내 힙합씬에 얼마나 남성 중심 서사가 굳게 자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성차별은 여성 개인이 그냥 랩을 잘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만약 내가 랩을 정말 잘해서 누구나 인정하는 래퍼가 된다면, 나는 돌연변이 취급 받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건 슬릭이잖아. 여자가 아니라 슬릭이잖아.’라고 이야기 할 것이고 다른 여성 래퍼들은 여전히 ‘랩 못한다’는 편견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나 편견이 향하는 건, 결국 여성 래퍼를 여성으로만 소비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 힙합씬은 그런 것 같다.
- 국내 힙합씬 내에 속한 뮤지션으로서 성차별이 만연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내가 ‘대한민국 힙합씬’ 내에 속해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국내 힙합 음악도 더 이상 소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국내 힙합 뮤지션의 음악이라도 3곡 중 1곡은 차별적인 내용, 불편한 단어가 담겨있다. 이런 불편한 음악을 소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국내 힙합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소위 한국의 ‘메이저 힙합’은 음악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과정에서 솔직함으로 포장된 비도덕적인 메시지를 담는다. 그리곤 ‘이게 힙합이야. 나는 당당하니까.’ 라는 태도로 일관한다. 그런 태도가 차별적인 음악을 재생산한다고 생각한다.
- 힙합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힙합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는 다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이라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성차별적인 내용이나 불편한 가사 때문에 ‘국내 힙합 음악은 듣기 불편해’라고 생각한다면 듣지 않아도 괜찮다. 더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다른 장르, 다른 뮤지션의 음악을 듣는 것도 좋다. 나는 그저 나의 음악을 더 잘 만드는 게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창선 PD changsun91@hankookilbo.com
한설이 PD ssolly@hankookilbo.com
정대한 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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