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기업은행의 반대에도 백복인 KT&G 사장이 지난 16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하자, 민영화된 공기업 최고경영자(CEO) ‘셀프 연임’ 문제점을 지적하던 정부 당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가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나, 외국계 자본의 지분율이 높은 민영화 기업 경영진은 외국계 자본 의결권 자문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국내기관투자자의 의결권을 약화하고 있다.
KT&G의 2대 주주인 기업은행은 이날 주주총회에서 백 사장이 측근으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의 비상식적인 공모 절차를 통해 ‘셀프 연임’을 시도하고 있고 인도네시아 담배업체 트리삭티 인수 과정에서 분식회계 의혹으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여서 최고경영자(CEO) 리스크가 있다며 연임을 반대했다. 이는 기업은행의 최대주주인 정부가 사실상 백 사장의 연임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주주의 절반이 넘는 외국인 투자자의 결정에 큰 역할을 하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찬성의견을 낸 데 이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찬성 권고에 따라 1대 주주 국민연금조차 중립 의견을 내면서 이날 총회에선 주총에 출석한 의결권 있는 주식의 76%가 연임에 동의했다. 기업은행은 KT&G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해 이사회 이사를 기존 8명에서 10명으로 늘리자고 했지만 이마저도 부결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2003년 김종창 당시 기업은행장이 유상부 포스코 전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자 유 전 회장이 곧바로 사퇴 의사를 밝힌 것과 비교된다. 15년 사이 정부의 영향력이 얼마나 축소됐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반대 의견을 낼 것으로 예상됐던 국민연금이 중립 의견을 낸 것도 백 사장 연임을 도왔다. 국민연금은 2015년 의결권 자문사의 반대 의견 권고를 따르지 않고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해 홍역을 치른 뒤, 경영권 문제 개입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정부의 반대에도 연임에 성공하긴 했지만 백 사장의 앞날도 가시밭길이 될 전망이다. 우선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의 정밀감사가 진행 중이고 검찰수사도 앞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KT&G는 담배가격 등 사업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에 백 사장으로선 정부와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숙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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