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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개헌논의와 정치공학

입력
2018.03.19 14:2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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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와대 주도로 개헌논의가 재점화했다. 지난주 국민헌법자문특위가 개헌 자문안을 대통령에게 제출하면서 6월 개헌 가능성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대통령이 지방선거와 개헌을 동시에 진행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면서 6월 개헌은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헌법개정 절차상으로도 개헌을 위한 시간은 충분하다. 더구나 32일 만에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던 87년 개헌의 경험을 고려할 때 6월 개헌이 불가능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재점화된 개헌논의도 정치공학적 대립 앞에서 앞길이 순조롭지 않다. 이미 야당은 개헌은 국회가 해야 할 일이라며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도 선포하였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일단 대통령안은 거부하겠다는 태도다. 대통령안이 제출되더라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암시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역시 밀어붙이기 식으로 나서기 어렵다. 대통령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때의 정치적 부담은 매우 크다. 이후 정국에서 사사건건 국회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 또한, 국회 내 파국을 예상하면서도 대통령이 개헌안 제출을 강행하는 이유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여당이 지방선거 투표율 상승에 따른 이점을 누리고자 한다는 정치적 공세에 휘말릴 수 있다.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와 지방선거의 동시 시행은 국민투표의 높은 참여율이 지방선거로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결국, 개헌논의가 동력을 얻을 수 있는 곳은 국민의 공감에서다. 이 점에서 특위가 제시한 몇몇 개헌안은 환영 받을 만하다. 예를 들어, 안전권, 정보기본권 등을 신설하여 기본권을 강화하고, 지방분권 및 민생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규정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87년 개헌 당시 고려되지 않았던 사회적 변화를 적절히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특위안은 두 가지 측면에서 국민들의 선호를 적절히 반영했는지 의구심을 자극한다. 우선 국민헌법자문특위와 국회의 헌법개정특위는 다양한 개헌 사안에 대한 국민적 선호를 상이하게 진단하고 있다. 헌법자문특위는 헌법 전문의 내용수정,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의 도입, 대통령제 정부형태 및 결선투표제 등에 대하여 국민적 공감이 이미 형성되었다고 판단한다. 반면, 헌법개정특위는 동일한 사안들에 대해 국민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평가한다. 두 기구 가운데 어느 쪽의 평가가 더 정확한 것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두 기구가 보여준 차이는 한 달 남짓 짧은 시간 동안에만 활동한 헌법자문특위기 충분한 국민의견 수렴을 거쳤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둘째, 특위안은 정부 기구 간 권력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한 국민의 염원을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 특위안은 결선투표제와 연임제를 통해 대통령의 정통성과 권력 안정성을 현행 헌법보다 강화하고 있다. 반면,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국회의 권한은 개선되지 않았다. 일부 인사권을 국회로 이전하는 것이 전부다. 개헌을 통해 현행 헌법에 씌워진 ‘짜깁기 헌법’이라는 오명을 해소하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올바로 복원하고자 했던 국민의 염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개헌은 국가 운영의 원리와 틀을 규정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권력배분의 큰 틀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을 두고 정치세력들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완전히 배제한 채 접근할 것이라는 예상은 너무 순진하다. 따라서 개헌논의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시발점은 국민적 동의가 이루어진 사안과 정치공학에 따른 주장을 신중히 구분하려는 노력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반면, 정치공학적 고려에 기초하여 국민적 동의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태도는 지난 시절의 오류를 되풀이함과 동시에 발전적 논의를 좌초시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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