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曹操, 155~220)는 중국 역사 인물 중 꽤 친숙한 이 중 한 사람이다. 유명도로 보면 진시황이나 유방, 징기스칸 같은 지도자나 공자, 맹자, 관우에 뒤지지 않을지 모른다. 간웅과 악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20세기 이후 중국 안팎에서 재평가되고 있다.
순자는 애공편에서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또 엎어뜨린다(水能载舟亦能覆舟ㆍ수능재주역능복주)’는 말로, 백성이 권력을 만들어 낼 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 시사한다. 유비와 조조는 위 경구대로 당대에는 백성의 지지로 촉한(蜀漢)과 위(魏)의 국가 기반을 다졌지만, 역사에선 유비가 사가, 소설가에 의해 띄워진 반면 조조는 폄하되어 왔다.
배경에는 인기 있는 소설인 삼국연의에 담긴 역사 인식이 있다. 작자인 나관중은 원말 명초의 소설가로, 유학의 충의(忠義) 이념을 실천한 유비(161~223)의 촉한에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하고, 유학보다 법가 사상을 따르며 능력 중시를 앞세운 조조의 위를 부정한다. 이는 송대에 편찬된 자치통감강목에 담긴 주희 사상과 맥이 같다.
역사적 사실만 보면, 위가 촉을 멸하고 위의 바통을 이어받은 서진(西晉)이 오를 멸망시켜 삼국을 통일하므로 조조는 역사의 승자 반열에 들 수 있다. 당대에 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지만, 서진의 사가 진수는 정사 삼국지에서 그를 나쁘지 않게 적고 있다. 그런데 진수 이후 한(漢)을 받드는 위정자와 사가 등에 인해 그의 이미지가 변질된다.
오늘날의 소설 삼국지는 정사에 주석을 단 배송지의 삼국지주, 원 영종대 우씨가 전승 설화를 덧붙여 이야기물로 펴낸 삼국지평화, 삼국연의, 청의 모성산·종강 부자본, 20세기 전반 요시카와 에이지본으로 이어지면서 첨삭이 가해진 것이다. 중앙집권을 지향한 중국의 역대 권력은, 체제와 정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 촉한의 정통성을 잇고 있음과 유학의 충의, 천하위공(天下爲公) 이념을 강조한다. 소설 삼국지는 이 작업에 꼭 맞는 교재인 셈이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우리 속담의 중국·베트남 버전은 ‘조조 얘기하면 그가 나타난다’다. 유사한 각국 버전에 따르면 그는 호랑이, 늑대(사우디, 프랑스), 당나귀(그리스, 이스라엘), 악마(영국, 독일, 러시아, 인도), 그림자(일본), 괴물(스웨덴) 등에 비견될 수 있다. 2007년 묘에서 발견된 그의 두개골이 파손된 것은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다.
봉건체제의 청이 망하고 중국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이 확산되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루쉰, 궈모뤄, 마오쩌뚱, 장쭤야오 등에 의한 조조 재평가가 시작된다. 최근의 유적 발굴이 이 같은 움직임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2001년 이후 추진된 한-수 대 도읍인 뤄양(洛陽) 일대 유적지와 2007년의 그의 묘 발굴에서 확인된 사실을 정리해보자. 왕궁 숫자가 적고 규모도 작으며, 가도를 정비하고 돌을 깔아 수레가 다니도록 하는 등 도읍을 왕 중심이 아닌 백성 친화 공간으로 만든다, 이같은 도성 구조가 청대까지 이어지고 조선과 일본에도 전파된다, 규모가 작은 묘와 사치스럽지 않은 부장품은 민중과 재정에의 부담 증대를 경계한 것으로 한 황제의 그것과 대조된다.
근자의 발견으로 기왕의 업적이 재조명되고 있다. 군사 목적으로 개간한 변방 토지인 둔전을 목적 완수 후 국가에 반납하는 대신 세금을 내며 경작케 한 둔전제다. 이를 통해 농민의 정착도를 높여 군사력과 재정력 증가의 초석을 다진다. 아울러 인재 등용과 관련하여 아들 조비대에 구품관인법으로 발전하는 구현령 등으로 가문과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있는 이를 뽑는다. 이때 작시 능력 등 문학적 소양을 평가하여 수ㆍ당의 과거제 도입의 초석을 깔고, 상상력이 풍부한 정치가와 관료를 다수 확보하여 개혁 추진에 대비한다. 이같은 조조의 철학과 개혁 노선은 황제 외척인 왕망의 어설픈 개혁, 후한 후반의 부패 정치와 크게 구별된다.
사가 등에 의해 왕망, 동탁, 사마의와 더불어 오랫동안 악인 이미지로 각색된 조조를 선하게 다시 그려내는 작업은 예삿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봉건사회가 아닌 근대 시민사회에서 적지 않은 이가 그의 인간경영을 재조명하며 평가한다. 게다가 유적 발굴로 확인된 그의 백성 친화적 면모는 정사의 서술과 부합하고, 우리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 지도층에 절실히 요청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도 중첩된다.
끝으로 기득권층 출신임에도 민중의 눈높이로 부패한 정치, 사회경제의 개혁에 나서 성과를 거둔 조조의 모습은, 사익을 추구하다 1년여 사이에 잇달아 구속, 기소되는 우리의 두 전직 대통령과 대비된다. 긴 왕조 시대에 왜곡된 인물의 재평가를 통해 자국 역사의 품격을 지키려는 중국측 시도는, 최고 권력에 오른 자들에게 법의 잣대를 들이대 미적지근한 적폐청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우리측 시도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훗날 사가가 이들 작업을 어떻게 서술할지 적잖이 궁금하다.
배준호 전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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