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니 봄타령. 지독한 미세먼지를 피해 남쪽으로 봄나들이. 시골에 다녀왔다. 말이 나들이지 무겁디 무거운 마음. 혼자 사는 아버지에게 이제 다섯 달 된 강아지를 넘겨주기 위해서 떠난 길이다. 아버지가 받아줄까? 글쎄다, 닭이나 키워 달걀이나 얻어먹으면 될 일, 산 동물은 절대로 집에 안 들인다 하던 양반 아니냐. 차창 밖으로 순이 올라온 청보리밭이 보였다. 초록은 초록. 보리순 뜯어 홍어탕이나 끓여먹으면 좋겠구나. 엄마가 말한다. 홍어는 이맘때가 맛있나? 글쎄다, 홍어는 언제 먹어도 맛있지. 보리순은 딱 지금밖에 못 먹으니, 뭘 갖다 붙여도 안 맛있겠냐.
다행히, 아버지는 막무가내로 안겨 드는 비글의 재롱에 그만 마음을 빼앗겨, 아주 두고 갈 게 아니라 며칠 맡기러 온 거라면 그냥 지금 데려가라 엄포를 놓았다. 어쩐지 부듯하고 어쩐지 아쉬운 요상한 마음. 너 이제 시골개 되는 거야. 닭똥이나 주워 먹으며. 제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글이란 놈은 닭 쫓는 재미에 빠져 한동안 푸다닥 휙 온 마당을 휩쓸고 뛰어다니더니,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쑥을 뜯어먹는다. 개풀 뜯어먹는 소리 한다더니, 네가 바로 그 짝이구나. 사료보다 맛있냐? 그 쑥. 아무래도 네 식성이 시골개로 타고난 모양이구나. 암만, 사료보다 맛나겠지, 봄 쑥.
쑥을 뜯기 시작했다. 뿌리째 뽑아라, 싹 날 때 잘라버려야지, 여름 되면 아주 쑥밭이다. 쑥을 보니 도다리 쑥국 생각. 오늘 장이 어디더라. 고창이냐 무장이냐 해리냐. 도다리 한 마리 사와라. 안 되면 그냥 된장국도 좋지요. 그래도 이왕이면 도다리쑥국. 쑥 다 뽑으면 도다리 사러 장에 가자. 솜털 뽀얀 어린 쑥. 쑥쑥 뽑혀 나오는 쑥. 은근하게 취하는 봄 쑥.
바지락쑥국은 어때요? 바지락은 좀더 기다려야지. 바지락은 사오월. 쑥이 올라올 때부터 맛 들기 시작해 죽순이 올라올 때 최고로 맛있는 법. 죽순이면 바지락이 아니라 서대 아니오? 참서대. 뼈째 얄팍얄팍 썰어 죽순 넣어 무쳐먹으면 을매나 맛있어. 서대는 살이 올랐는데 죽순이 아직이구나. 죽순이 쑥쑥 올라올 때는 쭈꾸미에 밥이 쑥쑥 차지. 죽순에는 쭈꾸미. 그것이 딱 떨어지는 제철. 죽순이 한창일 때 갑오징어도 한창. 억센 죽순을 돌로 자근자근 쳐서 부드럽게 만들고, 갑오징어는 그냥 살짝 데쳐 초장에 살짝. 죽순이 쑥쑥 자라는 동안 서대와 쭈꾸미와 갑오징어가 살을 찌우며 바통 터치. 쑥을 뜯으며 대나무 숲을 흘끔거리는 봄날. 봄바람에 묻어오는 파도소리.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네 돌미나리. 다음에 오면 뜯어먹겠다. 여기는 미나리, 저기는 참나물, 요기조기는 원추리, 또 쩌기는 취나물. 내 눈에는 그저 들썩이는 빈 땅, 고만고만한 연두 새싹인데, 내 어머니 손은 벌써 된장에 참기름에 마늘 넣고 나물을 무치고 있었으니. 아직 싹도 올라오지 않은 엄나무며 두릅나무며 마른 나무 옆을 지나갈 때마다, 엄나무 순을 꺾어 장아찌를 담그고 두릅을 삶아 초장에 푹 찍어 먹는 것은 당연지사. 입안엔 온통 새싹들의 잔치가 벌어졌다.
하루 종일 그렇게 땅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뜯고 베고 옮겨 심은 다음의 저녁 밥상. 도다리는 없었다. 어디서 얻어온 머우 새순과 요즘 한창인 보드라운 쪽파를 삶아 나물을 무치고, 닭을 한 마리 잡아 엄나무 가지를 꺾어 백숙을 끓여 먹었다. 그러면서 꼬막이 미끌거리기 전에 달래 넣고 양념장 만들어 무쳐먹어야 할 텐데, 다음엔 제가 도다리를 사올 터이니 쑥을 뜯어 놓으시지요, 머우가 억세지면 장어탕을 끓여먹으면 좋은데, 빨리 죽순이 올라와야 홍현항에 갑오징어 배가 들어올 텐데, 하며 육지에서 바다로 봄에서 여름으로 넘나드는 식탁. 봄 도다리 가을 전어. 도다리 쑥국 쭈꾸미 죽순. 4455 음절도 흥겹게 쑥,딱, 떨어지는 계절의 맛. 그 옆에서 도시 개로 자란 비글은 아무래도 쑥보다는 개껌이라는 듯 아각아각 맛나게 소가죽을 씹고 있었더랬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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