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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한강 자전거도로인가

입력
2018.03.29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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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인 25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에서 자전거 이용자들이 보행자 사이를 내달리고 있다. 공원 입구와 배달존 주변을 지나는 자전거도로는 보행자부터 로드바이크 동호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뒤엉키면서 아슬아슬한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휴일인 25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에서 자전거 이용자들이 보행자 사이를 내달리고 있다. 공원 입구와 배달존 주변을 지나는 자전거도로는 보행자부터 로드바이크 동호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뒤엉키면서 아슬아슬한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로드바이크, MTB 이용자들이 보행자 사이를 달리고 있다.
로드바이크, MTB 이용자들이 보행자 사이를 달리고 있다.
횡단보도를 지나던 보행자와 자전거가 뒤엉키면서 위험한 상황도 자주 연출된다.
횡단보도를 지나던 보행자와 자전거가 뒤엉키면서 위험한 상황도 자주 연출된다.
동일한 공간을 달리는 자전거라도 속도가 다른 탓에 추월과 역주행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한 로드 바이크 이용자가 어린이를 추월하고 있다.
동일한 공간을 달리는 자전거라도 속도가 다른 탓에 추월과 역주행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한 로드 바이크 이용자가 어린이를 추월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자전거와 보행자, 심지어 전동 휠까지 한강 자전거도로를 공유하면서 혼란은 가중된다.
다양한 종류의 자전거와 보행자, 심지어 전동 휠까지 한강 자전거도로를 공유하면서 혼란은 가중된다.
25일 오후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를 지나는 자전거 822대의 속도를 전수 측정했다. 한 로드 바이크 이용자가 40㎞/h 속도로 달리고 있다. 한강 자전거도로의 권고 속도는 20㎞/h이다.
25일 오후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를 지나는 자전거 822대의 속도를 전수 측정했다. 한 로드 바이크 이용자가 40㎞/h 속도로 달리고 있다. 한강 자전거도로의 권고 속도는 20㎞/h이다.

“지나갑니다!” 25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여의도 지구에서 ‘로드 바이크(도로 사이클)’를 타고 질주하던 남성이 고함을 쳤다. 고함 소리에 한번, 달려드는 속도에 또 한번 놀란 보행자들은 자전거도로 위에 멈춰 선 채 우왕좌왕했다. 이미 무수한 초보자와 대여용 자전거를 추월하며 달려온 남성은 길을 막고 선 보행자들 앞에서 할 수 없이 속도를 줄였다. 그리곤 보행자들 사이를 지나가며 욕설을 중얼거렸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뒤통수에도 싸늘한 시선이 꽂혔다. “뭐야, 재수 없게…”

최악의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휴일 오후 한강시민공원은 나들이 인파로 북적거렸다. 특히 ‘배달존’ 주변 자전거도로는 치킨, 피자 등 음식을 들고 강 쪽으로 진출하려는 보행자와 자전거가 뒤엉키면서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졌다. 

한국일보 ‘View&(뷰엔)’팀은 이날 오후 1시부터 2시간 반 동안 이곳을 지나는 자전거 822대의 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최저 0㎞/h(제 자리에 멈춰 있는 경우)부터 최고 40㎞/h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였다. 혼란은 제각기 다른 속도를 지닌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동일한 장소를 지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야기된 필연이었다. 

각각의 속도를 자전거의 종류에 따라 분류해 보니 상급자들이 주로 타는 로드 바이크나 픽시(고정 기어를 뜻하는 ‘Fixed Gear’의 줄임말)의 속도가 가장 빨랐고, MTB 및 하이브리드, 대여용, 어린이 자전거가 그 뒤를 이었다. 일부 이용자들 사이에선 이러한 속도 차에 따른 서열 싸움도 감지됐다. 서열이 높은 쪽은 초보자나 대여용 자전거 이용자를 추월하며 윽박지르기 일쑤고 서열이 낮은 쪽은 병렬 주행과 급정지, 급유턴 등 ‘무개념’ 주행으로 상급자들을 압박했다. 때문에 현장에서 만난 이용자 대다수가 불편을 호소했다. 그리고는 그 원인이 되는 위협 요소를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지목했다.

대여용 자전거 이용자들이 옆으로 늘어선 채 병렬 주행을 하자(왼쪽 차선) 몇몇 이용자들이 중앙선을 넘어 추월을 시도하고 있다.
대여용 자전거 이용자들이 옆으로 늘어선 채 병렬 주행을 하자(왼쪽 차선) 몇몇 이용자들이 중앙선을 넘어 추월을 시도하고 있다.
자전거도로 위를 걸으면서 자전거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보행자들도 사고의 요인이 된다. 휴대폰을 보며 걷는 보행자를 피하기 위해 한 자전거 이용자가 중앙선을 훌쩍 넘어 주행하고 있다.
자전거도로 위를 걸으면서 자전거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보행자들도 사고의 요인이 된다. 휴대폰을 보며 걷는 보행자를 피하기 위해 한 자전거 이용자가 중앙선을 훌쩍 넘어 주행하고 있다.
전동 킥보드 등 전동장치를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타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지만 대여점은 버젓이 영업 중이다. 한 전동 킥보드 이용자는 “대여점에서 ‘괜찮다. 우리가 다 책임진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전동 킥보드 등 전동장치를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타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지만 대여점은 버젓이 영업 중이다. 한 전동 킥보드 이용자는 “대여점에서 ‘괜찮다. 우리가 다 책임진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자전거 초보자 안수정(29ㆍ왼쪽)씨가 25일 여의도지구에서 조심스럽게 주행하는 동안 로드 바이크를 탄 남성(오른쪽 뒤)이 추월하면서 “옆으로 붙어 가라”고 지적하고 있다.
자전거 초보자 안수정(29ㆍ왼쪽)씨가 25일 여의도지구에서 조심스럽게 주행하는 동안 로드 바이크를 탄 남성(오른쪽 뒤)이 추월하면서 “옆으로 붙어 가라”고 지적하고 있다.

▲내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1. 로드 바이크족(평균속도 22.6km/h, 전체의 25.7%)

주행 경험 많고 안전에도 민감한 ‘로드족’에겐 눈에 거슬리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동호회에서 활동 중인 이송은(31)씨는 “목줄 없는 강아지, 자전거 도로 구분 못하는 어린이, 옆으로 나란히 타는 연인들 모두 통행을 방해할 뿐 아니라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라고 지적했다. 경기 성남시에서 서울 잠실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김모(32)씨는 이른바 픽시족을 위험 요소로 지목했다. “위법 행위가 멋인 양 중앙선 침범, 급정거, 급전환을 일삼는 ‘무개념 픽시족’의 행태는 일일이 지적하기도 벅차다. 주행 매너와 간단한 수신호만이라도 배우고 타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2. 픽시족(평균속도 23km/h, 전체 3.0%)

“횡단보도도 아닌데 좌우 안 살피고 갑자기 뛰어드는 보행자가 가장 무섭죠.” 역동적인 움직임을 위해 픽시를 즐겨 타는 구자준(15)군의 이야기다. 순간적으로 30km/h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는 ‘픽시족’이 꼽는 위협 요소엔 초보자도 포함됐다. 김준엽(16)군은 “주행 중 갑자기 방향을 바꾸다 멈춰 선 초보자를 피하려다 인대가 늘어나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라고 했다. 주현석(14)군은 “그룹 라이딩을 하는 일부 동호인 아저씨들 중엔 수신호나 경고 없이 갑자기 추월해 들어오거나 역주행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3. 초보 따릉이족(평균속도 16.3km/h, 전체 40.9%)

‘따릉이(서울시 공유 자전거)’를 대여해 한강을 찾은 유진일(28) 안수정(29)씨는 씽씽 달리는 로드족 때문에 주눅이 들었다. 유씨는 “초보라서 천천히 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삐뽀삐뽀’ 소리가 나더니 자전거 동호인 아저씨가 추월하면서 ‘옆으로 붙어 가라’며 고함을 쳤다”라고 말했다. 안씨는 “너무 무서워서 이제 그만 타려고 반납하러 간다”라고 말했다. 

자전거도로를 걸으면서도 자전거에 대해 신경을 안 쓰는 보행자 역시 경계의 대상이다. 박소영(27)씨는 “자전거 도로 위로 걷는 사람들이 벨 소리를 듣지 못해 내 자전거에 치일까 걱정”이라고 했다. 

#4. 보행자(시속 5km/h 미만)

한강시민공원을 찾은 보행자들에겐 모든 자전거가 위협적이다. 상급자는 속도가 빨라서, 초보는 제어를 잘 하지 못해서 위험하다. 여섯 살 난 아이와 함께 한강을 찾은 정모(34)씨는 “보행자가 많은데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 자전거가 너무 많다. 자전거도로와 보도를 완전히 분리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친구들과 함께 나들이 나온 정소영(21)씨는 “자전거 타는 분이 소리치기 전까지 자전거 도로인 줄도 모르고 걸어 다녔다. 자전거가 이렇게 많이, 빨리 다니는 줄 알았다면 이쪽엔 얼씬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기 다른 입장이지만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의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다. 뚝섬지구의 경우 보행로와 자전거도로를 분리한 후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상승했다.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여의도지구 자전거도로를 이전할 계획은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한강을 찾는 자전거 이용객이 다양한 만큼 모든 입장을 다 충족시킬 수는 없다. 보행자와 자전거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과속 방지 장치, 횡단보도를 설치하고 있지만 자전거 이용자들 스스로도 안전 의식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동호인 대회 출전 경험이 있는 이지황(35)씨는 “자전거 대여점에서 헬멧 등 안전장비 착용의 필요성은 물론 기본 매너조차 가르쳐 주지 않는 것도 문제”라며 “한강 자전거도로는 어린이부터 선수까지 모두가 이용하는 만큼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한 무리의 픽시 이용자들이 여의도지구 자전거도로를 달리고 있다. 움직임이 역동적이고 순간적으로 속도와 방향을 변경하기 용이한 자전거지만 헬멧 등 안전장비를 갖춘 이용자는 보기 어렵다.
한 무리의 픽시 이용자들이 여의도지구 자전거도로를 달리고 있다. 움직임이 역동적이고 순간적으로 속도와 방향을 변경하기 용이한 자전거지만 헬멧 등 안전장비를 갖춘 이용자는 보기 어렵다.
한 로드 바이크 이용자가 여의도지구 횡단보도를 지나며 앞선 대여용 자전거를 추월하고 있다.
한 로드 바이크 이용자가 여의도지구 횡단보도를 지나며 앞선 대여용 자전거를 추월하고 있다.
횡단보도를 위태롭게 건너는 보행자. 보행자들에게 상급자든 초보자든 자전거 자체가 위협적인 존재다.
횡단보도를 위태롭게 건너는 보행자. 보행자들에게 상급자든 초보자든 자전거 자체가 위협적인 존재다.

▲자전거 속도 분석▲

25일 오후 1시부터 3시 30분까지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을 지나는 자전거 822대의 속도를 전수 측정했다. 평균 속도를 기준으로 가장 빠른 자전거는 23.0km/h를 기록한 픽시였다. 로드 바이크가 22.6km/h로 그 뒤를 이었고, MTB 및 하이브리드가 18.9km/h, 따릉이 등 대여용 자전거는 16.3km/h, 어린이 자전거의 경우 15.5km/h를 기록했다.

자전거 종류별 숫자는 친구 연인 가족들이 주로 이용하는 대여용 자전거가 336(40.9%)대로 가장 많았고 MTB 및 하이브리드가 230대, 로드 바이크는 211대로 집계됐다. 이날 최고 속도는 40km/h로 로드 바이크가 기록했다. 한강 자전거도로 권장 속도인 20km/h를 초과한 비율은 픽시가 25대 중 18대인 72%로 가장 많았고, 로드 자전거는 67%(211대 중 132대), MTB는 30%가 권장 속도를 초과했다. 대여용 자전거는 4%에 불과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김주성기자 poem@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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