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강헌 지음
돌베개 발행〮359쪽〮1만6,000원
그는 “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그대를 포기할 수 없어요”라고 노래했다. 10대 시절 ‘평생 섹스도 결혼도 안 해도 좋으니 음악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으며, 음악을 계속할 수만 있다면 집도 재산도 가지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에게 ‘그대’는 분명 음악이었을 것이다.
음악의 신전에 인생을 기꺼이 바치려는 청춘이 허다한 점을 감안하면 그는 행운아 중에 행운아였다. 그는 간절한 바람대로 20대 초반부터 음악에 자신의 혼과 육체를 온전히 바칠 수 있었고, 음악 덕분에 생계를 이어 가고 이름까지 세상에 알렸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누렸다고 해야 하나 그에게 불운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의료사고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갑작스레 떠났기 때문이다. 책은 46년 삶을 살며 한국 대중음악사에 선연한 좌표를 찍었던 가수 신해철(1968~2014)의 질주를 기억한다.
저자는 유명 음악평론가이자 대중문화 기획자이고 신해철의 20년 지기다. 오랜 지인이 돌아보는 생애이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삶이 담기리라 독자들은 기대할 만하다. 물론 이런 식의 ‘비화’를 다루고 있기는 하다. 소년 신해철은 재능을 타고나진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교내 합주반 활동을 할 때 담당 교사는 도저히 재능이 없는 것 같으니 공부에 전념시키라고 소년의 어머니에게 충고했다. 아버지는 외동아들 신해철의 밴드놀이가 못마땅했고, 신해철은 아버지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동네 문방구점에서 산 멜로디언과 스펀지로 소리를 막은 통기타로 하룻밤 만에 곡 하나를 썼다. 그를 세상에 알리고 그의 이름과 동의어가 된 노래 ‘그대에게’의 탄생 과정이다.
하지만 책은 호사가들의 구미에 애써 맞추려 하지 않는다. 한국 대중음악계의 부침의 연대기를 몸으로 봤고 그 부침의 일부였던 저자는 신해철 개인의 음악 역정을 대중음악사의 관점에서 돌아보고 해석하며 평가한다. 신중현이 씨앗을 뿌렸던 한국 록의 계보 안에서 신해철의 음악이 지닌 의미를 들여다본다.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등장했던 밴드 ‘무한궤도’가 데뷔 음반이자 은퇴 음반을 내고 소멸할 수밖에 없었던 시장 상황, 스타성 강한 신해철이 솔로로 전성기를 구가하다 명성과 돈을 뒤로하고 밴드 넥스트를 결성해 활동하는 모습 등을 소개하며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의 대중음악계를 복기한다.
객석을 쥐락펴락하는 무대 매너와 치밀한 논리를 지닌 달변가로서 정치적 발언을 마다하지 않았던 신해철의 별명은 ‘마왕’이었다. 그는 음악을 용맹정진하면서도 대한민국이라는 틀 안에서 좌충우돌했고, 사회와 종종 불화했다. 그 뜨거웠던 삶이 남긴 업적이 저평가됐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밴드와 솔로를 오가고 장르를 종횡무진하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단언한다. 지난 세기 말 마지막 10년 한국 대중음악의 ‘빛나는 리스트에서 하이라이트는 역시 신해철과 서태지의 이항 구도일 것’이라고.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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