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이 갓길 소방펌프차 덮쳐
단순 문 개방ㆍ동물 포획 등
‘출동 거절기준’ 이틀 앞두고 참사
“꽃도 못 피우고…” 유족들 눈물
잠긴 문 개방, 애완동물 구조 등 긴급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 119구조대가 출동하지 않아도 되는 ‘출동거절 기준’ 시행을 이틀 앞두고 유기견을 구하기 위해 출동한 소방관 3명이 구조현장에서 숨졌다.
30일 오전 9시 46분쯤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남리 43번 국도에서 25톤 트럭이 유기견 구조 신고를 받고 출동해 갓길에 주차해 있던 소방펌프차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소방펌프차에서 내려 유기견 구조활동에 나서던 아산소방서 소방교 김모(29ㆍ여)씨와 소방관 임용 예정 교육생 문모(23ㆍ여)씨, 김모(30ㆍ여)씨 등 3명이 숨졌다. 또 트럭 운전자와 소방펌프 차량 운전자도 다쳐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세 여성 소방관은 이날 오전 9시40분 아산시 둔포119센터에 “개가 줄에 묶여 도로에 방치돼 있다”는 동물구조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이들은 현장 3차로 갓길에 도착, 소방펌프차량에서 내려 구조활동에 나서는 순간 25톤 트럭이 추돌, 80여m 밀려난 소방펌프차에 치여 변을 당했다. 문씨 등 교육생 2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고 소방교 김씨는 병원으로 후송 도중 사망했다.
사고소식을 듣고 시신이 안치된 아산시 온양장례식장을 찾아온 가족과 동료, 친지들은 “일찍 돌아오겠다고 말하며 출동했던 이들이 숨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며 망연자실 했다.
특히 단순 문 개방이나 벌집제거, 애완동물 구조 등 긴급을 다투지 않는 상황은 119에 신고하더라도 출동을 거부할 수 있는 내용의 ‘생활안전출동 거절기준’ 시행을 이틀(4월 1일)앞두고 참변이 일어났다.
소방교 김씨는 지난해 말 동료 소방관과 결혼해 신혼의 단꿈에 젖은 새댁으로 남편은 천안서부소방서에서 근무 중이다. 동료 이모씨는 “늘 밝고 적극적이었던 김 소방관이 너무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며 눈물을 흘렸다.
선배 김씨를 따라 현장 실습교육을 받던 문씨와 김씨도 임용을 불과 2주 앞둔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문씨와 김씨는 각각 경북 포항과 전남 광양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소방공무원 임용시험에 합격(제80기)한 예비 소방관들이다. 이들은 16주의 교육기간 가운데 충남 천안의 충청소방학교에서 12주간의 교육을 마쳤고 지난 19일 4주간 아산소방서에 배치돼 실습을 받던 중이었다.
딸이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경남 창원에서 한달음에 올라온 소방관 교육생 김씨의 어머니는 “위급한 상황에 놓인 국민을 구해보겠다며 소방관이 되기 위해 그렇게 공부했는데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었다”며 통곡했다. 포항에서 온 문씨 아버지도 빈소의 영정 앞에서 주먹으로 탁자와 가슴을 두드리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김 소방교의 시어머니는 “개 한 마리 때문에 며느리가 하늘나라로 떠났다”며 오열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오후 충남도청을 방문해 “소방관이 긴급 구조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출동기준 강화를) 직무범위에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오후 6시쯤 장례식장을 방문했으나 유족의 반발로 조문하지 못했다. 김 장관은 “곳곳에서 사고가 나 어이없는 희생이 이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국민께 드릴 말씀이 없다” 고개를 숙였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세 분의 헌신을 잊지 않겠다”고 추모했다.
최근 10년간(2008~2017년) 화재 진압, 구조 등 본연의 소방 임무를 수행하다 숨진 소방관 수는 51명에 달한다.
소방청은 이날 김 소방교에 대해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 김 소방교와 함께 사고로 숨진 두 교육생과 관련해서는 관계 기관에 임용예정자도 순직 처리가 가능한지 유권 해석을 의뢰한 상태다.
경찰은 사고를 낸 60대 트럭 운전자 A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해 졸음운전 여부를 조사 중이다.
이준호 기자 junh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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