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휴가 독려 위해 도입
일본항공 휴가 사용률 90%
‘잘 쉬는 것은 경쟁력’이란 말은 선진국인 일본에서 현실과 거리가 멀다.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국가에선 연간 30일 안팎의 유급휴가를 소진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는 반면, 일본은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하는 문화 탓에 유급휴가 사용률이 50%에 턱걸이하는 ‘휴가 후진국’인 탓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휴가지에서의 업무를 인정해 주는 워케이션 제도가 기업에 확산되고 있다.
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지난해 7월 일본항공(JAL)과 같은 대기업이 이를 도입해 주목 받았다. 휴가지에서의 업무를 인정함으로써 직원들의 장기휴가 사용을 보다 쉽게 만드는 것이 취지다. 단순히 명절 때 고향에서 업무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외여행 중에도 업무에 대응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장기휴가 사용을 독려하겠다는 것이다.
일본항공 인재전략부에서 근무하는 나카마루 아스카(中丸亞珠香)씨는 지난해 8월 친정인 히로시마(廣島)에서 화상전화로 프로젝트 회의에 참석했다. 항공권 구입까지 마친 상태에서 일주일 휴가 기간 중 하루 회의가 잡혔지만 워케이션을 신청해 예정대로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워케이션 도입 이전이었다면 휴가 일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항공에선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워케이션이 실시되고 있다. 반나절 단위로 사용할 수 있으며 워케이션을 이용한 날은 출근 처리된다. 다만 휴가 때 일을 가지고 가는 것은 금지하되, 휴가 도중 부득이하게 참여해야 하는 업무가 생기거나 휴가 준비 등의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휴가 중 하루 정도의 업무 일정 때문에 휴가 자체를 연기하거나 취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31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워케이션을 도입한 일본항공은 지난해 유급휴가 사용률이 2015년에 비해 17%포인트 오른 90%를 기록했다.
워케이션 확산에 따라 관광지에선 휴가 온 직장인들에게 작업이나 회의를 위한 장소를 대여하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온천 등으로 유명한 와카야마(和歌山)현은 지난해 수도권 기업을 대상으로 3박4일의 워케이션 체험행사를 열고, 현립 정보교류센터 건물을 작업 장소로 무료 개방했고, 올해에는 가족 단위 체험행사를 진행한다.
제도 도입만큼 중요한 것은 일과 휴가의 경계에 대한 명확한 회사의 인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직장인 스스로 자신의 업무 방식을 결정할 재량권이 작은 일본에선 “워케이션이 확산되고 있는가”하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이 먼저 워케이션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는 얘기다. 예정된 휴가 때까지 업무가 마무리될 것 같지 않아서 워케이션으로 변경하는 경우엔 당초 취지와 달리 충분한 휴식으로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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