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당 500원에 매일 이메일 에세이 보내드려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당 500원에 매일 이메일 에세이 보내드려요”

입력
2018.04.05 04:40
27면
0 0

웹툰 작가 이슬아 일간 연재

1만원 내면 4주동안 글 구독

본인ㆍ부모ㆍ애인 소재는 무진장

픽션ㆍ논픽션 버무린 ‘응픽션’

“시즌2인데 재구독률 높아”

자신을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리는 연재 노동자’라고 소개한 이슬아 작가는 “미슬이(미래의 이슬아)는 웹툰을 주업으로 하는 좋은 수필가였으면 좋겠다. 소설을 공부하면서 지금의 제 글에서 과잉된 자아를 잘 제거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자신을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리는 연재 노동자’라고 소개한 이슬아 작가는 “미슬이(미래의 이슬아)는 웹툰을 주업으로 하는 좋은 수필가였으면 좋겠다. 소설을 공부하면서 지금의 제 글에서 과잉된 자아를 잘 제거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당신의 메일로 매일 글을 보내드립니다. 일간 이슬아’

지난 2월 이런 문구가 쓰인 한 포스터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를 모았다. 1만원을 계좌로 송금하면 이슬아(26) 작가가 직접 주 5일, 4주간 독자에게 이메일로 글을 보내는 프로젝트를 소개한 포스터다. 단돈 500원에 1,500자 내외의 에세이를 받아보는 셈이다. 공지 후 일주일가량 신청자를 받은 작가는 2월 12일 첫 연재를 시작해 3월 9일 시즌 1을 종료하고, 3월 26일부터 시즌 2를 진행 중이다.

지난 달 28일 서울 망원동에서 만난 이슬아 작가는 “메일링이 오래된 형식인데 열렬히 신청하고, 받아주시는 게 감사하다. 플랫폼을 거치면 창작 방향과 내용이 달라지는데 그 과정 없이 글을 온전히 직접 전하기 때문에 더 재미있고 더 어렵다”고 말했다. 구독자 수를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렵다면서도 “(시즌 2때) 신규 가입이 늘었고, 특히 재구독률이 아주 높았다”고 덧붙였다. “매일 제 글을 받아주는 매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동료 만화가 잇선씨께서 일기를 메일로 보내는 시스템을 생각하고 있다고 해서 아이디어 출처를 밝히고 저도 연재해도 되냐고 물어봤죠.”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학자금 대출상환이다. 작가의 긴긴 이야기를 줄이면 이렇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집에서 독립한 그는 카페 서빙부터 잡지 기자, 영화전문지 인턴까지 각종 아르바이트를 섭렵하며 월세와 생활비를 벌었다. “혼자 살고 싶어 악을 쓰고 독립했으나”, “보증금 500만원이 없어 친구랑 모여 살았고” ‘혼자만의 방’을 갖는데 3년이 걸렸다. 그는 “서울에서 자신의 공간을 갖는다는 게 그렇게 어렵다는 걸 20세부터 깨달았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중 가장 시급이 센 건 화실의 누드모델이었다. 누드모델협회에 가입해 일감을 받았는데 시급은 대략 3만~5만원선. 작가 원고료와 비슷하게 10년 전에 비해 지금도 거의 오르지 않았다. 이 작가는 “크로키는 1~2분마다 알아서 동작을 바꾸고, 유화는 최대 4시간가량 똑같은 포즈를 취한다. 몸에 근육이 하나도 없었는데, 가만히 버티는 동작이 많아서 그런지 언제부턴가 등 근육이 갈라지더라. 누드모델하고 나면 항상 아팠는데 지금 생각하면 근육통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때 경험을 소설로 써 21세 되던 2013년 한겨레21 ‘손바닥 문학상’을 탔다. 문학상 수상 이력을 발판으로 글쓰기 과외를 시작했다. 초등생 2명으로 시작한 글쓰기 모임은 이제 연령별, 직업별 글 모임 몇 개를 따로 운영할 정도로 커졌지만 역시 2014년과 과외비는 같다. 이 작가는 “제가 가르치는 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법”이라면서 “자기 이야기를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수능에도, 대입 논술에도 나오지 않는 공부라 과외비를 올리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학자금 대출 상환을 위해 '일간 이슬아'를 연재 중인 이슬아 작가. 이메일 연재를 시작하면서 구독료 입금 확인, 이메일 발송 등 기고 외에 행정 업무를 직접 맡게 됐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학자금 대출 상환을 위해 '일간 이슬아'를 연재 중인 이슬아 작가. 이메일 연재를 시작하면서 구독료 입금 확인, 이메일 발송 등 기고 외에 행정 업무를 직접 맡게 됐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글로 어떻게 먹고 살지”를 고민하던 작가는 제 일상을 “낙서처럼 만화로 그려서” 페이스북에 올렸고, 웹툰은 순식간에 1,000회 이상 공유되며 화제가 됐다. 레진코믹스가 곧바로 연재를 청탁했다. 이슬아 작가는 “허상 같아 보이는 소셜미디어가 제 생계를 책임져주는 걸 확인하면서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취업보다는 전업 작가를 염두에 두게 됐고(“졸업할 때 학점은 올(All) D. 유일하게 갖고 있는 자격증이 라틴댄스 강사 자격증이라 회사에 합격할만한 스펙이 없어요. 창작자로 자리 잡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바람대로 차근차근 자리를 잡았다.

웹툰 작가로 활동하면서도 대학 등록금은 계속 학자금 대출로 메웠다. 대학 졸업 딱 1년이 지난 올해 초, 원금 상환 시기가 도래했고 “온전히 빚 갚는데 필요한” 연재 매체가 절실해졌다. “써놓은 글도 없이 매일 연재할 수 있겠느냐”는 주변의 우려도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다.

‘일일 연재의 소재는 어디서 찾을까’하는 궁금증은 딱 닷새 치 연재만 읽어보면 ‘글 밑천 하나는 마르고 닳지 않겠다’는 확신으로 바뀐다. 애인과 부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과거를 재가공한 이야기가 시리즈로 나오고, 때로 작가 일상과 상상이 씨줄 날줄처럼 엮인다. 스스로 픽션도 논픽션도 아닌 에세이를 작가는 ‘응픽션’이라고 정의했다. ‘논’의 발음을 최대한 얼버무려서 픽션도 논픽션도 아닌 것처럼 애매하게 말하는 것이다.

‘등록금을 낼 돈이 복희네 집엔 한 푼도 없었다. 어떤 행운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등록금 납부기한이 지나갔고 복희는 대학생이 되지 못했다. 그 날 복희는 소주 세 병을 들고 다락방에 올라가 문을 걸어 잠근 뒤 3일간 나오지 않았다. 3일 뒤 다락에서 내려온 그녀는 비빔밥을 양푼 한가득 비벼 먹고 구직을 시작했다. 한 편 웅이는 시를 써서 서울예전 문예창작과에 입학했고 잠자리 안경을 낀 채 은둔형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작가 부모의 청춘을 상상해서 쓴 3월 7일자 ‘복희’편이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가족에 대해 여러 버전으로 써서 익숙해졌다. 이제 어떻게 써도 가족들이 딱히 호들갑스럽게 반응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연재가 각오했던 것보다도 더 어렵다”는 그는 “가능하면 반년 이상 연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제가 봐도 아쉬운 글을 연재했을 때 피드백이 바로 오거든요. 돈 내고 제 글 구독해주는 분이라고 해서 항상 호의적인 게 아니란 것도 배우게 됐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제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어려웠어요. 그래도 매일 글 쓰는 사람이 됐다는 게 좋아요. 한 달만 무사히 연재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반 년 이상 해보고 싶어요.”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