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손예진이 5년 만의 안방극장 복귀작으로 다시 사랑이야기를 택했다.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예쁜 누나’)에서 커피회사 가맹운영팀 대리 윤진아 역으로 연상연하 커플의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일과 결혼이 숙제처럼 느껴지는 35살, 윤진아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에 공허함을 느낀다. 그러던 중 그는 오랜만에 만난 남동생의 절친한 친구인 서준희(정해인)에게 설레는 감정을 느낀다. 손예진은 최근 열린 ‘예쁜 누나‘ 제작발표회에서 “내 나이 또래의 여자들이 느끼는 많은 것이 대본에 녹아 있었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멜로물에 얼굴을 자주 비췄지만, 늘 한결 같았던 건 아니다. 그는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대필한 손편지로 몰래 마음을 전하는 순수한 소녀로, 게이와 한집에 살게 되는 엉뚱한 ‘건어물녀’(집에 있기 좋아하고 연애를 잊어버린 여성)로 다양한 색깔을 드러냈다. 손예진을 ‘멜로 장인’으로 만든 대표작을 돌아봤다.
1. 영화 ‘클래식’(2002)
새하얀 피부에 긴 머리카락, 차분하고 조용한 말투. 영화 ‘클래식’ 속 손예진의 가녀린 모습은 서정적인 로맨스의 감성을 극대화했다. 손예진은 1963년 고등학생 주희와 2003년 대학생 지혜 역을 맡아 1인 2역을 소화했다. 신인배우던 손예진은 이 작품으로 단숨에 흥행 배우에 올라섰다.
지혜(손예진)는 대학교 연극반 선배 상민(조인성)을 짝사랑한다. 그는 상민에게 보낼 연애편지를 대필해달라는 친구의 부탁에 속앓이를 한다. 그러던 어느날 벽장에서 엄마의 편지함을 발견하면서 엄마의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를 알아간다. 그는 이내 엄마의 일기장에 등장하는 첫사랑 준하(조승우)와 상민이 묘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손예진은 시대를 오가며 60년대의 고전적인 사랑과 현대의 발랄한 사랑을 한꺼번에 표현했다. 현대의 연인을 더 소극적으로 표현해 상처 받지 않는 관계를 원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담았다. 그는 이 작품으로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2. KBS2 드라마 ‘여름향기’(2003)
드라마 ‘가을동화’, ‘겨울연가’로 이어지는 윤석호 PD 계절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애초 배우 전지현, 이영애 등이 여주인공 물망에 올랐으나 성사되지 못했고 이후 손예진을 주인공으로 발탁했다.
표절 논란과 부실한 시나리오에 대한 지적이 일면서 기대 이하의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손예진은 청초하고 맑은 모습으로 눈길을 샀다. 심장병을 앓다가 심장 이식을 받는 설정으로 가녀린 이미지가 더욱 부각됐다. 윤 PD는 당시 손예진에 관해 “손예진은 드라마 이미지를 만들 준비가 돼 있었다”라며 “(손예진을 보고) ‘천상 여자’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여름향기’가 일본 전국방송 TV(TBS) 전파를 타고 입소문이 일면서 손예진은 일본 진출의 기반을 다지게 된다.
3. 영화 ‘내 머릿 속의 지우개’(2004)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 악연으로 만나 포장마차에 나란히 앉은 수진(손예진)과 철수(정우성). 철수의 고백에 수진이 술잔을 비우면서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수진이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며 불행이 시작된다. 이름, 날짜, 장소 등을 종종 잊어버리던 그는 결국 사랑하는 철수마저 잊어버리게 된다. 수진은 철수를 난생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하기 시작하지만 철수는 그 대신 모든 것을 기억해주겠다고 다짐한다. 우연한 만남으로 사랑을 시작하고 행복을 누리다 불행한 사고로 이별을 맞게 되는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는 20대의 알츠하이머라는 설정이 가미되며 절절한 분위기를 빚어낸다.
손예진은 ‘내 머리 속의 지우개’로 유부녀 연기를 처음으로 펼쳤다. 나이 보다 성숙한 눈물 연기로 소녀 티를 벗고 여성스러운 매력을 과시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개봉 전 부산국제영화제(PIFF)에서 당시 역대 한국 영화 수출 최고가인 270만달러에 일본 가가(Gaga)에 팔렸다. KBS2 드라마 ‘여름향기’에 이어 영화가 일본에서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등 성과를 내 손예진은 한류스타로 성장하게 됐다.
4. MBC ‘개인의 취향’(2010)
한 남성 건축사가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속여 미혼 여성과 동거를 하게 된다. 이 파격적인 스토리에서 손예진은 성소수자 이성친구를 사귀고 싶어하는 커리어우먼 박개인을 연기했다. 박개인은 젊은 CEO지만, 평소엔 실수와 사고를 연발하고 답답할 정도로 사람을 믿어 배신도 당하는 순수한 인물이다. 손예진은 기존의 청순한 멜로 연기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망가지는 모습으로 유쾌한 인상을 남겼다.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노다메 역 우에노 주리의 연기를 참고했다. 잘 씻지도 않고 남자에게 “청소 좀 하라”는 핀잔을 듣는 건어물녀를 발랄하게 표현했다. 소속사 대표가 “너무 심하게 망가지는 거 아니냐”는 걱정을 할 정도로 과감하게 연기했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보던 여자 주인공과 다른 인물을 표현해보겠다”는 의욕이 털털한 캐릭터로 드러났다. 당시 손예진은 그 이유에 대해 “연애 쑥맥에다 더럽고, 어느 것 하나 스스로 할 줄 모르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며 “큰 집과 어울리지 않는 아웃사이더, 오타쿠적인 면도 있는 일종의 에고이스트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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