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유일한 인천 토박이
나만이 유정복 토박이론 깰 수 있다
현 시장 재정정상도시 주장하지만
아직 빚이 10조1000억이나 남아
본청 부채 1조만 갚은 눈속임
원도심 전담 부시장제 도입
도시재생 총괄 기구 만들어
주민참여로 격차 문제 개선 유도”
잔잔했던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다. 2000년 해수부 장관으로 온 노 전 대통령과 4개월 18일을 함께 일했다. 6ㆍ13 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인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박남춘 의원 얘기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약자를 먼저 생각하고 지역적 불균형을 고쳐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반했다. 만남은 운명이 됐다.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5년을 꼬박 일했다. 자연스럽게 문재인 대통령과도 인연을 쌓았다. 문 대통령이 수석비서관을 할 땐 비서관으로, 비서실장을 할 때 수석비서관으로 지냈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대표적 친문 인사 중 한 명인 박 의원은 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가진 본보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제자이자, 문 대통령을 모시고 함께 일했던 정치인으로서 박근혜 정부 마지막 그림자를 반드시 지우고 싶다”고 강조했다.
_인천시장에 출마하겠다는 생각은 언제 처음 했나.
“2012년 대선에서 졌을 때다. 참여정부 5년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일했다. 유능과 원칙, 두 키워드로 대변되는 훌륭한 인물이 대선에서 낙마하는 모습을 보고 절치부심했다. 촛불혁명으로 중앙정권이 교체된 이번이야말로 인천의 정권교체를 이룰 적기라고 판단했다.”
_현역 의원이 출마하는 데 대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출마를 감행하기 전에 당과 충분히 교감했다. 만약 불출마 요청을 받았다면 당연히 선당후사의 자세로 수용했을 거다.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만 보고 승리를 낙관해서는 안 된다. 상대 후보를 확실하게 누를 수 있는 전략과 정책을 가진 최고의 후보가 최선을 다할 때 인천특별시대를 열 수 있다.”
_본선에서 본인의 강점은.
“저는 피난민의 자식으로, 민주당 유일의 인천 토박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토박이 민심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이를 깰 수 있는 건 같은 토박이인 저뿐이다. 보수세가 강한 바닷가 지역에서도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 22년간 해양수산부 관료로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강화ㆍ옹진군, 중ㆍ남ㆍ동ㆍ연수구 등 바닷가 주민과 교류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_‘친노’‘친문’이라는 평가가 짐이 되진 않나.
“나는 노 전 대통령이 하려던 일이 왜 해야 했고, 어떤 과정을 거쳤고, 또 어떻게 묻혀야만 했는지 모든 과정을 알고 있다. 뼈에다 그걸 다 묻었다. 정치철학 측면에서 나는 ‘뼈노’고 ‘친문’이 맞다. 보여주기식 토목사업만 남발하는 ‘친박의 마지막 그림자’를 지우고, 두 대통령처럼 사람다운 삶, 일상 속 행복을 지키는 시정을 지향하겠다.”
_유정복 시장의 시정 4년에 대한 평가는.
“일반적으로 시 본청의 채무가 1년 예산의 25%를 넘어서면 재정위기라고 말한다. 유 시장은 부채 3조7,000억원을 감축해 인천을 재정정상도시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따져보면 본청 부채만 1조원 갚아 만든 눈속임에 불과하다. 아직 빚이 10조1,000억이나 남은 인천을 어떻게 재정정상도시라 말할 수 있나.”
_인천은 지역 간 격차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
“맞다. 제일 시급한 문제다. 원도심 전담 부시장제를 도입하고, 도시재생 총괄 전담기구를 만들 생각이다. 지역별 현장소통센터도 설치해 주민참여를 통한 자생적 개선을 확대ㆍ유도 하고자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과 같은 방향이다.”
_인천특별시대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인천을 우리만의 가치와 장점을 내세울 수 있는 특별한 도시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인천은 수도권이라 규제를 많이 받는다. 그러면서도 서울이 아니라 차별 받는 ‘수도권의 변방’으로 인식돼 왔다. 앞으로는 시민들이 인천에 산다는 자부심을 갖게 해드리고 싶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 박남춘은
1958년에 태어난 인천 토박이로 박문초ㆍ동산중ㆍ제물포고를 거쳐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고향 인천의 바다를 사랑해 당시 비인기 부서였던 해운항만청(지금의 해양수산부)에 지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수부 장관을 역임할 시절 처음 인연을 맺었고, 노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3년 2월 청와대로 파견 갔다. 이후 대통령 비서실 국정상황실장, 인사관리비서관, 인사수석을 역임하며 참여정부를 마지막까지 지켰다.
정치 스승 노 전 대통령의 권유로 2008년 18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친노 계파 프레임에 갇혀 낙마했다. 환멸을 느끼고 정치를 멀리한 것도 잠시, 19대 총선에 재도전해 인천 남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 뒤 재선에 성공해 20대 국회에서도 의원 배지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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