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반공(反共) 혁명의 투사였던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유럽 분열을 주도하는 철권 통치자로 우뚝 섰다. 8일 치러진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여당 피데스가 개헌 의석 이상을 확보하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면서 3연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8일(현지시간) 헝가리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여당 피데스와 기독민주국민당(KDNP) 연합이 5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기록, 전체 의석 199석 가운데 개헌 가능한 3분의 2에 해당하는 133석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피데스와 KDNP의 득표율은 133석을 차지했던 2014년 총선 때의 44.8%를 넘어섰다.
투표율은 69.3%를 기록했다. 초반 투표율이 높게 나타나면서 야당 성향이 유권자가 대거 몰려 여당이 불리한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으나, 예상을 뒤엎고 여당 지지자들이 투표소를 찾은 결과로 보인다. 이날 수도 부다페스트를 비롯한 시내 곳곳의 투표소에서는 투표 마감 시각인 오후 7시에도 투표소 밖으로 유권자들의 줄이 길게 이어져 투표 종료 시각을 늦추는 풍경이 벌어졌다.
이날 승리로 오르반 총리는 3연임을 하는 4선 총리가 되면서 2022년까지 헝가리를 이끌게 됐다. 1998년 35세의 나이로 처음 총리가 돼 4년간 국정을 맡았던 그는 2010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총선 기간 사위가 연루된 부패 스캔들이 터지고 측근들의 언론장악 및 시민단체 탄압 이슈도 제기됐지만, 오르반 총리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반 난민ㆍ반 이슬람’ 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허물어뜨리지 못했다. 오르반 총리는 승리가 확정된 뒤 환호하는 군중을 향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하고, 헝가리를 구할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오르반 총리의 압승에 유럽연합(EU)을 주도하는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은 크게 긴장하고 있다. 오르반 총리가 EU 집행부가 강조하는 시리아 등 중동 출신 난민들의 분산 수용을 거부하는 핵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난민을 ‘독(毒)’이라고 불렀던 오르반 총리가 압승을 거두면서 헝가리뿐만 아니라 상황이 비슷한 폴란드와 체코, 슬로바키아 등에서도 우파 민족주의가 득세하고, 이에 따라 EU 내부에서 동서 분열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편 서유럽 국가의 극우 성향 정치인들은 이번 선거 결과에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축하하면서 “EU가 조장한 대규모 이민이 또 한 번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의 극우 정치인 헤이르트 빌더르스 자유당(PVV) 대표도 “훌륭한 결과”라고 환영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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