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나는 오늘 어떤 사람으로 변하고 있는가? 내가 몰입해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물밀 듯 다가오는 일상을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부분이 합하면 전체가 되고, 순간이 모아지면 일생이 된다. 바다는 물방울의 집합체이고, 사막은 모래알의 집합체다. 인생은 지금 이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들과 행동들의 집합이다. 나의 삶은 겉보기에는 상관없어 보이는 수많은 생각과 행동이 만든 총체다. 이 총체가 바로 나다. 일 년이 순간의 연속이듯, 나의 운명과 개성은 내가 지금 떠올리는 생각의 결과물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깨닫는다면, 모든 것이 거룩하고 모든 행동이 영적이다. 진리는 셀 수 없는 사소함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소에 집착하여 20세기 건축에 획을 그은 사람이 독일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난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다. 그는 192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에 독일관을 건축하도록 위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심연에 몰입하는 수련을 통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자신의 철학과 카리스마를 물건으로 표현하였다. 그가 건축한 독일관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는 없다. 커다란 투명 유리와 반투명 대리석으로 가득한 이 구조물을 잡고 있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식 기둥들이다.
미스는 스페인 국왕의 방문에 앞서 이 공간에 어울린 만한 가구도 만들었다. 기원전 15세기 고대 이집트 가구였다. 파라오 투트모세 3세(기원전 1479-1426년)는 고대 근동의 패권을 잡았고, 신을 대신해 세상을 통치하는 파라오에 어울리는 의자를 만들었다. 고정된 왕좌가 아니라, 자신이 어디로 가든, 자신이 통치자임을 확인시켜주는 접이식 의자다. 이 의자는 다리가 X자 나무와 그 위에 앉을 수 있는 가죽으로 장식되었다. 이 의자는 당시 중동과 유럽 전역에 수출되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터키, 미케네, 그리스, 그리고 심지어 알프스 산을 넘어 오늘날 독일 할레에서도 발견됐다. 미스가 투트모세 3세의 접이식 의자를 본따 만든 게 소위 ‘바르셀로나 의자’다. X자 다리는 크롬 도금으로 장식했고, 그 틀에 가죽 좌판과 등받이를 얹었다. 간단한 구조이지만, 더할 것이나 뺄 것이 없는 그 자체로 의연하고 독립적이다. 4,500년 전 파라오가 앉았던 의자이기 때문에, 20세기 스페인 국왕이 앉아도 손색이 없는 품위를 지녔다. 바르셀로나 의자는 미스가 건축한 투명한 건물 속 심심한 공간에 제격인 가구다.
미스는 자신의 예술정신을 담은 두 명언으로도 유명하다. 하나는 ‘덜한 것이 더한 것이다’(Less is more)라는 문장이다. 자신의 건물에서 군더더기를 가려내 과감히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을 소중하게 남겼다. 다른 하나는 ‘신은 사소한 것들에 있다’(God is in details)라는 문장이다. 필자가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지도교수가 논문에서 오자를 발견할 때마다 내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미스가 꼭 필요한 것만 남겼다면, 그것은 사소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이다. 그의 건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아름답고 의미가 있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극히 사소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소한 것을 무시하는 행위는 사소한 것들의 집합체인 우주를 무시하는 행위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나 눈송이는 저 멀리서 빛나는 별만큼 완벽하다. 아침 이슬의 구조는 아이슈타인의 상대성이론만큼 숭고하다. 파르테논 신전의 수많은 벽돌 하나하나도 자신의 완벽한 크기와 위치를 알고 있다. 사소한 벽돌이 모여, 자연스럽게 위대한 파르테논 신전으로 태어났다. 사소는 위대한 전체의 종이 아니라, 주인이다.
허망한 사람은 거대담론에 집착하고 위대한 과업을 무모하게 시도한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사소한 일들을 무시하거나 얕본다. 그는 자화자찬에 중독되어 불가능한 일을 꿈꾸기 때문에, 자신과 주위를 돌보는 겸손이 없다. 위대한 사람은 자신에게 지금 여기에 주어진 사소한 일에 몰입한다. 그는 대중의 환호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필요한 일에 집중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지혜로워진다. 그는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는 위대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을 장악하여, 정직, 진실, 배려를 실천한다.
그는 사소한 일상을 통해 자신 스스로 주인이 된다. 자신이 눈앞에 떨어진 일에 몰입하고 모든 힘과 지혜를 쏟아놓아 완수한다. 위대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사소한 일을 위대하게 처리하는 사람이다. 그는 어느 것도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찮고 어리석은 사람은 사소한 일들을 허접하게 처리한다. 그 일들이 자신에게 칭찬이라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면 더욱더 그렇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주인이 되려고 헛되이 노력한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내가 통과하고 싶은 하늘 문을 여는 열쇠다. 나는 사소한 일의 완벽한 완성을 통해 나에게 감동적인 나 자신의 모습을 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사소한 일은 무엇인가?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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