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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눈 덮인 벚꽃과 한반도의 수상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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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눈 덮인 벚꽃과 한반도의 수상한 봄

입력
2018.04.09 17: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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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 연상시키는 미중 무역전쟁

양국 패권경쟁에 희생되지 않으려면

커진 판 넓게 읽는 역량과 지혜 절실

2017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때의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최근 가열되고 있는 양국의 무역전쟁이 역사적인 한반도의 봄 도래를 위협하고 있다. 연합
2017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때의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최근 가열되고 있는 양국의 무역전쟁이 역사적인 한반도의 봄 도래를 위협하고 있다. 연합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원자폭탄급이라면 내달 열릴 북미정상회담은 수소폭탄급이라고 할 만하다. 핵융합 에너지를 이용하는 수소폭탄은 원자폭탄을 기폭제로 쓴다. 말하자면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북미정상회담은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원자폭탄을 기폭제로 쓰는 수소폭탄인 셈이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도움 닫기 삼아 5월 중에 만나 햄버거를 먹으며 극적 합의를 이끌어 낸다면 한반도의 늦봄은 정말 화려하고 눈부실 것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누가누가 더 미쳤나 경쟁하던 두 사람이지만 통념과 상식을 뛰어넘는 스타일로 화통한 거래를 성사시킬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리만 되면 과실과 곡식을 살찌울 뜨거운 여름을 거쳐 추수감사절 쯤 엔 “(결실 풍성한) 가을이 왔다” 는 제목의 남북합동예술단 공연을 보지 못할 이유가 없다.

4월 들어 기온이 급상승해 온갖 봄꽃이 동시에 꽃망울을 터뜨렸다. 3월 중순에서 4월 말에 걸쳐 차례로 피던 매화 벚꽃 라일락꽃을 올 봄엔 함께 본다. 하늘도 아차 싶었는지 계절의 속도 조절을 위해 때 아닌 꽃샘 한파를 몰고 왔다. 만개한 벚꽃과 개나리, 진달래 위에 소복이 쌓인 흰 눈은 기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건 뭐 뜨거운 커피에 아이스크림을 띄워 마시는 비엔나커피도 아니고…

자연의 변덕을 지켜보며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적 개최 덕분이지만 좀 급하게 온다 싶었던 ‘한반도의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 조짐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외교안보라인을 네오콘 초강경파로 채운 것은 극독도 잘 쓰면 약이 되듯 얽히고설킨 한반도 문제를 고르디우스 매듭 자르듯 단박에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터이다.

문제는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 형세인 미·중 무역전쟁이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관세 부과를 “중국 부상을 저지하고 미국 이익을 영속화하려는 공세”, 즉 권 패권전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 관영언론들은 “항미 원조 전쟁(6·25전쟁 참전)에서 미군과 싸웠던 방식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침략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결기를 내보였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그레이엄 엘리슨은 미중 간 패권경쟁을 다룬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무역전쟁이 양국간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는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의 위협과 기존 패권 강대국의 두려움이 전쟁으로 이어진 역사적 현상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부른다.

엘리슨은 한반도의 긴장과 분쟁도 미중 패권전쟁의 도화선 하나로 꼽았다. 글로벌 무대나 동아시아에서 미중이 패권을 놓고 격돌하는 상황에선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역사의 반복처럼 미중이 속절없이 패권전쟁으로 치닫는다면 그 사이에 낀 대한민국이 운신할 공간은 넓지 않다. 물론 트럼프의 과도한 무역공세가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등 지구촌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는 데다, 개인 스캔들을 덮고 11월 중간 선거를 의식한 국내적 요인에서 비롯된 만큼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그러나 전격적 북중 정상회담이 상징하듯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미중 패권경쟁은 이미 현실이다. 문 대통령과 그의 외교안보라인은 그 동안 진정성과 정직을 바탕으로 한 신뢰 외교로 북미정상회담을 중개하고, 일찍이 보지 못했던 중국과 러시아 일본의 러브 콜을 이끌어냈다. 미중 패권경쟁을 비롯해 주변국가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한반도에서 이제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커진 판을 치밀하게 읽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도 그런 치열한 고민 속에 치러져야 한다. 김정은을 어떻게 맞을지 따위 비본질적 보여주기에 집착할 게 아니다. 보수의 위기를 맞아 성찰과 기본에 충실하기보다는 바닥으로 향하는(통일대교 바닥에 주저앉거나 바닥성 막말을 빈발하고 봄을 Bomb으로 읽는 등) 홍준표 대표가 밉더라도 좀 눈길을 주고, 한반도 봄의 과속에 어지럼증을 느끼는 적잖은 국민의 마음도 살필 필요가 있다.

논설고문 겸 한반도평화연구소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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