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일회용 잔 받아 ‘미션 실패’
3일 만에야 성공… 쓰레기 상당량 감소
1인당 연간 비닐봉투 사용량
한국 420개… 핀란드는 4개
주말인 7일 오후, 홀로 사는 서울 은평구 오피스텔에 딸린 분리수거장으로 향하던 기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평일 집에 붙어있는 시간도 별로 없던 것 같은데, 커다란 종이가방엔 비닐봉투 여러 개와 일회용 커피잔, 막걸리 병 등 한주간 모아둔 재활용 쓰레기가 그득해서다.
아울러 며칠 전 취재차 다녀온 송파구 재활용폐기물선별장에 쌓인 높이 10m 남짓 ‘폐비닐 쓰레기 산’이 떠올랐다. 구청이 수거해 왔지만, 한국은 물론 중국서도 가져가지 않아 별다른 ‘배출구’없이 쌓여만 가던 그 산. “이대로면 적재 공간이 부족해 두세 달 뒤엔 수거도 어려울 것”이란 재활용업체 관계자 말에 내뱉었던 한숨이, 깨달음을 품고 우리 집 분리수거장 앞에서 새 나왔다. ‘그 산이 이렇게 시작됐구나.’
초등학생이던 1990년대 가슴에 새긴 ‘분리수거를 잘 하자’ 표어를 지금까지 성실히 따라왔지만, 21세기 어른에겐 분명 20세기 어린이가 품었던 습관보다 한 차원 엄격한 책임이 요구되고 있었다. 분리만 잘 해서 버리면 누군가 가져가고, 뒷일은 고민할 바 아니란 생각을 고쳐야만 했다. ‘비닐봉투와 일회용 잔 배출부터 줄여보자.‘ 이렇게 8일(일요일) 출근길부터 나 홀로 캠페인은 시작됐다.
준비물은 간단했다. 비닐봉투를 대체할 에코백에 일회용 잔을 대체할 텀블러를 담아 집을 나섰다. 첫날 저녁까진 성공적이었다. 뭐든 안 사고 덜 마시면 될 일이란 생각에 비닐봉투 쓰레기 발생 근원지인 편의점을 멀리하고, 식사 후 찾은 인사동 단골 카페에선 당당히 텀블러를 내밀어 직원을 당황시켰다. ‘잘 했어, 잘 하고 있어.’ 스스로를 다독였다.
예상치 못한 ‘미션 실패’는 일과 후 선·후배를 만난 서울 모처 족발집에서 벌어졌다. ‘자전거용 헬멧을 빌려달라’는 후배(나) 부탁을 흔쾌히 허락하고, 미세먼지와 바람을 피하라며 고글까지 챙겨 준 선배의 세심함에 감동했다. 그러나 “비도 오는데 여기에 가져가라”며 헬멧과 고글을 담아 내민 비닐봉투를 그대로 받아온 게 문제였다. 물론 이튿날 오전 사용한 뒤, 같은 봉투에 담아 반납하면서 ‘쓰레기 발생’까지 이어지진 않았으나, 비닐봉투 사용의 일상화를 새삼 실감했다.
도전 이틀째인 9일 출근길에도 에코백과 텀블러를 들고 나섰지만, 이번엔 ‘일회용 잔 안 쓰기’ 다짐이 무너졌다. 단골 카페 직원은 이틀 연속 내민 텀블러에 당황하지 않았지만, 점심식사 후 휴대폰으로 인공지능 음성 주문을 한 게 발단이었다. 새 주문기능도 활용해 보고, 시간도 절약하겠단 마음에 자주 가는 프랜차이즈카페에 근접해 휴대폰 인공지능 버튼을 눌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해줘”를 외치니, 실제로 가장 가까운 매장에 빠른 주문이 가능했다.
‘나 좀 스마트한데?’ 자아도취에 빠진 채 향한 카페 픽업(pick up)대에서 ‘김형준 님’을 기다리고 있는 커피를 마주한 순간, 입에선 나도 모르게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오늘도 망했네.” 자동 주문된 커피는 일회용 잔에 담겨있었다. 직원이 설명한 일회용 잔 안 쓰는 법은 이랬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머그잔에’ 주문해줘.”
다행히 이틀간 겪은 실패를 사흘째 반복하진 않았다. ‘작심삼일’째던 10일, 단골 카페 직원은 텀블러 이용이 고맙다며 과자를 덤으로 건넸고, 점심식사 뒤 찾은 프랜차이즈카페에선 생각지도 못했던 ‘개인 잔 이용고객 300원 할인’ 혜택까지 받았다. 병원서 처방 받은 인공눈물을 사러 간 약국에서는 약사가 자연스레 내준 비닐봉투를 자연스레 반납했다.
늦은 밤 들어선 집. 일주일의 절반이 지났음에도 재활용품을 모아두던 대형 종이가방엔 다 마신 생수 병(2ℓ)과 회식 다음날 아침 끓여먹은 라면봉지만 담겨있었다. 쓰레기 배출을 없애긴 힘들어도, 줄이고자 마음먹으면 적잖이 줄일 수 있단 결론이 섰다.
우리나라 1인당 비닐봉투 연간 사용량(2015년 서울시 통계)은 420개.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이 쓴다는 그리스(250개)보다 월등히 많고, 비닐봉투 사용 습관 자체를 들이지 않는다는 핀란드(4개)나 아일랜드(20개)엔 비할 바 아니다. 2003년 125억개던 국내 비닐봉투 생산량은 2015년엔 216억개로 늘었다. ‘쓰레기 배출 줄이기, 나부터.’ 수십 년 전 ‘분리수거 잘 하자’만큼 흔히 듣고 배운 구호지만, 이제 실천이 절박한 시기가 됐다.
글·사진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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