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순수성 평가 잣대로 작동
개신교인 54%가 “동성애는 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이 올해 초 기획해 지난 9일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개신교인의 의식수준을 평가하기 위한 이 설문조사는 개신교인 800명과 비(非)개신교인 200명 등 총 1,000명을 상대로 개헌, 남북문제, 통일, 그리고 동성애 4가지 주제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결과 개헌, 남북문제, 통일 같은 이슈에서는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인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 개신교인의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성도 확연히 줄어 비개신교인과 엇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하지만 동성애 문제에서는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동성애가 죄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개신교인 비율은 53.5%에 이르렀다. 비개신교인의 응답률(18.5%)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죄가 아니라고 답한 응답자의 경우 개신교인은 23%에 그쳤지만 비개신교인은 45%에 달했다. 동성애가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AIDSㆍ에이즈) 같은 질병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개신교인은 55.1%나 됐지만, 비개신교인은 35%에 그쳤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 그간 개신교계가 퀴어축제 반대운동을 벌이고, 각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 등 학생인권조례 제정이나 젠더 교육 강화방침을 비판하고, 여성가족부 등 정부부처가 진행하는 성평등 정책에 반기를 들고 나선 이유를 알 만하다.
개신교계는 외부에 대한 비판에 이어 내부 단속도 강화했다. 지난해 예장합동, 예장통합 등 개신교계 주요 교단들은 교단 헌법을 개정,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사람은 목사 등 교회 내 주요 직책을 못 맡게 했다. 교단 소속 학교의 교원이나 교직원으로도 임용될 수 없도록 했다. 동성애를 지지ㆍ옹호하는 의사표현을 하거나 동성애자 결혼의 주례를 맡을 경우 교단 총회 차원에서 징계하도록 했다. 교단이 ‘헌법 개정’이란 카드까지 꺼내 들며 동성애를 틀어막은 이상, 앞으로 최소 몇 년간은 개신교계가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할 가능성이 없다는 게 교계 안팎의 시각이다.
동성애자 목회 문제를 논의하는 등 교단들 가운에서도 그나마 개방적이라는 평을 받던 기장(한국기독교장로회)조차 동성애자 목회 관련 논의를 중단시켰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봤다는 얘기다. 기사연의 설문조사 결과는 이런 교단의 움직임과 일치한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실제 교회 개혁을 부르짖는 이들도 동성애 문제만큼은 과감하게 접근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한 교회개혁단체 간부는 “동성애 문제도 한번은 다뤄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면서도 “이미 교회 세습, 재정 투명성, 교회 내 성추행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는 상황에서 동성애 문제까지 건드리면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개신교인들을 반(反)동성애 만큼은 왜 완강하게 고수하는 것일까.
조사를 수행한 박재형 기사연 연구실장은 가장 큰 이유로 ‘무지(無知)’를 내세운다. 동성애 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다. 이는 설문조사에서 ‘동성애는 질병’이란 질문에 개신교인들 45.2%가 ‘그렇다’고 답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동성애가 병이라면 치료하면 된다. 아픈 게 죄는 아니다.
그러나 개신교도들은 이런 모순을 알아채지 못한 채 동성애는 무조건 나쁜 것이니까 죄인 동시에 질병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박 실장은 “동성애는 나쁜 것이라고만 일방적으로 배웠을 뿐, 그게 왜 문제인지 체계적으로 이해한다거나,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동성애가 질병이란 것도 사실이 아니다. 한동안 동성애는 정신질환으로 분류됐으나 1974년 미국정신의학협회가 만드는 정신질환 목록에서 빠졌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성적 지향과 정신적 장애가 무관하다고 최종적으로 결론지은 건 1993년이었다. 그럼에도 동성애가 질병이라고 믿은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 세력은 1976년 ‘엑소더스 인터내셔널’을 결성,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바꾸어주겠다는 ‘동성애 전환 치료’ 운동을 강하게 전개했다. 미국심리학회는 2009년 무분별한 전환 치료가 오히려 더 해롭다는 결론을 내렸고, 2013년 ‘엑소더스 인터내셔널’은 “우리의 무지로 동성애자에게 도움보다 상처를 줬다”고 선언하며 자진 해체했다.
오히려 WHO는 동성애 관련 질병 목록에 ‘자아이질적 성적 지향’이라는 걸 넣어뒀다. 이것은 동성애가 질병이라는 게 아니라, 동성애자가 동성애를 죄악시하고 억압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얻게 되는 질병을 뜻한다. 결국 질병은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 억압’인 셈이다.
남은 건 에이즈 공포인데 이 또한 동성애 문제와의 연관성에 대한 이해가 많이 달라졌다. 지난해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이란 책에서 성소수자 문제를 다뤘던 사회역학자 김승섭 고려대 교수는 “치료약이 발달하면서 지금은 만성질환 수준의 질병이 된 만큼 동성애자를 에이즈 환자로 낙인 찍는 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반박했다.
유교적 가부장주의와 결합해 반동성애 설교를 개신교인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애희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은 “우리는 계시나 설교에 대해 의심하고 고민하면서 참뜻을 찾아 가도록 신앙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면서 “교회의 반공, 안보 논리가 더 이상 먹혀 들지 않게 되자 지금은 반동성애가 신앙의 순수성을 가늠하는 잣대처럼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성애 문제에 특히 완강한 개신교인들의 반대 인식은 이 문제에 부대껴보는 경험이 늘면서 해소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진보적 성향의 한국기독교회협의회(NCCK) 소속 강석훈 목사는 “개신교도들이 다른 정치 사회적 이슈에는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나름대로 생각해볼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성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사실상 거의 처음 마주 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그렇기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개신교계가 동성애를 전향적인 자세로 용인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억압받고 내몰리는 동성애자가 불쌍하다’는 인식과 ‘동성애자를 교인으로 받아줘야 한다’는 것과 ‘동성애자 목사도 가능하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 반동성애를 강조하는 이들도 ‘사회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는 데는 동의한다. 다만 그 이유 때문에 사회가 교회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강 목사는 “실제 전향적으로 동성애자를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포용하기로 결정한 서구 교회들의 사례를 봐도, 그런 결정이 내려진 뒤에도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 갈등과 논란이 여전히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호모 포비아’ 수준의 일부 개신교계의 극렬한 반발을 이유로 들어, 서구 교회는 개방적인데 한국 교회는 폐쇄적이라는 것도 지나치게 도식적인 이분법이라는 얘기다.
이번 설문조사를 기획한 김영주 기사연 원장의 결론도 결국 교회 공동체의 합의다. 김 원장은 “동성애를 포용하는 문제를 두고 실제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보면 목사, 신도 모두 다양한 스펙트럼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서 “된다, 안 된다 예단 없이 폭넓은 토론과 장기적 논의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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