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총영사직 요구했다 거절 당해”
경제 관련 ‘온라인 카페’로 유명세
작년엔 ‘문재인 지지 팟캐스트’ 제작도
“대선 댓글부대 진짜 배후 알아?”
올초부터 돌연 반문 성향 글 올려
김경수 기사 ‘오사카’ 댓글 수십개
‘민주당원 여론조작’ 사건 주범 김모(48)씨의 실체와 피의자들이 근무했던 경기 파주시 소재 출판사 정체는 모두 베일에 가려져 있다. 김씨는 개인 신상을 가린 채 ‘드루킹’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진보 성향 파워블로거이고 출판사 ‘느릅나무’는 8년간 펴낸 책이 한 권도 없는 유령출판사다.
느릅나무 공동대표인 김씨의 애초 필명은 드루킹이 아닌 ‘뽀띠’로,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커뮤니티 ‘서프라이즈’에서 경제와 국제역학관계 관련 글을 쓰며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드루킹’이라는 필명으로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유명해졌다. 그가 운영했던 블로그 ‘드루킹의 자료창고’는 2009ㆍ2010년 2년 연속 네이버 시사ㆍ인문ㆍ경제분야 파워블로그로 선정될 정도로 주목 받는 커뮤니티였다. 누적 방문자도 15일 기준 986만여명에 이른다. 김씨는 이 블로그에 정치 판세를 전망하는 글을 주로 올렸으나 게시글은 현재 모두 삭제된 상태다.
2010년 주식전문서 ‘드루킹의 차트혁명’을 편 김씨가 2014년 자신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만든 온라인 카페 ‘경제적 공진화 모임’도 인터넷상에서는 꽤 알려진 커뮤니티다. 소액주주운동을 통해 사회 변화에 나서겠다고 만든 이 카페는 회원 2,000여명이 활동하는 폐쇄적인 커뮤니티로 알려져 있다. 김씨와 공범 두 명은 이 카페 회원 아이디들을 활용,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의 댓글 추천 수를 조작했다.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이자 각종 커뮤니티에 친문(재인) 성향 글을 올리던 그는 올 초 들어 갑자기 반문 성향 글을 올리고 여론조작에 나서는 경향을 나타냈다. 그는 2016년 ‘나는 노무현의 지지자, 문재인의 조력자이며 문재인 대통령 시각으로 정국을 본다’고 문 대통령을 지지했다. 지난해 7월에는 ‘이니(문 대통령 애칭) 하고 싶은 거 다해’라는 제목으로 팟캐스트 방송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다 올 1월 자신의 페이스북 등에 “재주는 곰이 피우고 생색은 문꿀(문재인 지지자)과 네이버 부사장출신 윤영찬이 내는 이 웃긴 꼴을 언제까지 봐야 할지”라는 반문 성향 글을 올리는가 하면, 3월에는 “2017년 대선 댓글부대 진짜 배후가 누군지는 알아, 니들을 멘붕하게 해줄 날이 ‘곧’ 올거다”라는 협박 글도 썼다. 경남지사 출마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김경수 의원의 2월 23일자 경향신문 인터뷰 기사에는 ‘김경수 오사카’라는 댓글 수십개가 달렸다. 네티즌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았으나 김씨 일당이 쓴 압박 메시지로 추정된다. 김씨는 대선 이후 김 의원에게 지인을 위해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사실이 15일 확인됐다. 여권 관계자는 “(김씨가) 지난 대선 당시 캠프 내 주요 직책을 요구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며 “(김씨처럼) 온라인 상에서의 영향력을 이용해 선거를 돕겠다는 사람이 한둘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김씨와 공범 두 명이 근무했다는 출판사 느릅나무도 의혹투성이다. 경기 파주에 위치한 느릅나무는 ‘출판사’라는 간판만 달았을 뿐 2010년 문을 연 이후 단 한 권의 책도 출판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느릅나무 인근 출판사 관계자는 “꼭 책을 내야만 출판업체라고 볼 순 없지만 느릅나무의 경우 이곳(파주 출판산업단지)에 모인 출판사들과 확실히 다른 성격의 공간 같았다”고 했다. “오후 9시 이후에 20~30명이 출판사에 모여들었다”는 출판사 주변의 목격담도 나오고 있다.
사실상 이들이 범행을 모의하고 실행한 아지트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던 15일 0시쯤 찾은 느릅나무는 불이 모두 꺼진 다른 업체들과 달리 1, 2층 불이 켜져 있었다. 1층 사무공간엔 수십 개의 정체 모를 대형 종이상자가 가득했고, 2층엔 40세 전후로 보이는 한 남성이 있었다. 이 남성은 유리문 너머로 느릅나무에서의 역할을 묻는 기자 질문에 “할 말이 없다”고 말한 뒤 등을 돌렸다. 이후 남성은 1시 5분쯤 건물 불을 끄고 건물을 빠져 나와 흰색 승합차에 올라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이날 밤사이 김씨가 운영했다는 블로그 ‘드루킹의 자료창고’에 있던 게시물은 모두 사라졌다. 출판사는 올 2월 폐업 신고됐다. 경찰은 공범과 추가범행이 있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수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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