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안경 쓰고 보는 시선들
사고 친 문제아, 소년원 출신…
미팅서 “일진이었냐” 질문까지
가족도 검정고시엔 상처의 말
#어려운 대입의 문
학생부종합전형 아예 응시 못해
교과전형도 내신 환산해 불이익
자소서 재학시절 질문엔 난감
#눈감은 정부
시도교육청서 문제 출제 등 관리
전국 단위의 정책 마련 못해
“공교육 무너질라” 정부는 손놓아
기회의 사다리, 입지전적인 삶, 고학생....
검정고시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긍정적 이미지다. 1950년 처음 시작된 검정고시 제도가 7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배출한 합격자는 200여만명. 이런저런 이유로 공교육에서 떨어져 나온 이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부여했다. 정세균 국회의장,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이재명 전 성남시장, 이철성 경찰청장, 진웅섭 전 금융감독원장 등 검정고시 출신으로 성공 신화를 쓴 인물들도 적지 않다. ‘검정고시를 통해 가난과 고난을 딛고 일어섰다’는 류의 성공담에 사람들이 기꺼이 박수를 쳤다.
그러나 검정고시 출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이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끈기 없는 문제아, 남들보다 쉽게 대학에 가려 편법을 쓰는 자퇴생으로 단정 짓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알게 모르게 작동하는 학연에서 배제되며 취직이나, 조직 생활에서 차별과 불이익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검정고시인들은 말한다.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중ㆍ고교 졸업장이 이들에게는 결코 손에 쥘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행 티켓으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보이지 않는 차별
변리사 이재성(62)씨는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만 마치고 곧바로 전구 공장, 국수 공장, 목공소 등을 전전하며 돈을 벌었다. 아버지가 사고로 다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그러다 20세가 넘어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잇달아 합격한 뒤 공무원 시험에 합격, 총무처(현 행정안전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특허청에서 2002년 서기관으로 퇴직한 뒤 이후 변리사로 활동하고 있다. 전형적인 검정고시 성공스토리로 보이지만 그에겐 쉽사리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많다.
“제 나이 대에는 컴퓨터 타이핑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저는 예전부터 타이핑을 아주 잘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이씨가 공무원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연필로 서류를 작성한 뒤 사무실 여직원에게 타자기로 타이핑을 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그런데 이씨가 부탁한 서류는 번번히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고 한다. 이씨는 “나보다 늦게 서류 타이핑을 부탁한 다른 동료들이 검정고시 출신으로 배경이 없는 나를 만만히 여겨 ‘내 것부터 해 달라’고 너도나도 새치기를 하는 통에 결재 서류 작성이 자주 늦어졌다”며 “결국 참다 못해 스스로 타자 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그는 공직 생활을 하면서 회식 자리에서 취해본 적도 없다고 한다.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非)검정고시인에 비해 박한 근무 평정을 받아 승진과 인사 이동에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느꼈던 이씨는 “작은 트집 하나 잡히지 않으려고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고 말했다.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하면 사고를 쳐서 교도소에 다녀온 사람이나 소년원 출신이 아닌가 생각하는 시각이 있었죠. 검정고시 출신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술자리에서 학창시절 얘기가 나오면 살짝 빠져 나와 담배를 피우며 대화 주제가 바뀌기를 기다린 적도 많았습니다.”
평범하게 학교를 졸업한 이들로선 이씨 같은 검정고시인들이 학연의 영향력을 너무 과대평가한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얘기는 달랐다. 이씨는 “졸업장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영영 가질 수 없는 사람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면서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 사람들은 부모님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지 잘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근거 없는 편견
검정고시인들에게는 ‘문제아’라는 편견이 두텁게 덧씌워져 있다. 야학을 운영하며 검정고시인들을 양성하는 김지혜(46ㆍ가명)씨는 본인도 검정고시 출신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고교를 자퇴한 뒤 봉제공장에서 이른바 ‘시다’(미싱 보조) 일을 하며 돈을 벌었던 김씨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교편을 잡는 야학에서 공부해 고졸 검정고시에 붙었다. 하지만 이후 그의 삶은 편견과의 싸움이었다. 20대 후반 전문대에 입학한 김씨는 과 친구들과 함께 미팅을 나가 검정고시 출신임을 알렸다가 상대편 남자로부터 ‘혹시 일진이었냐’는 경멸조의 질문을 받아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경험도 있다고 했다. 좀 더 번듯한 직장에서 일 해보자는 꿈 역시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됐다. “이력서를 내면 ‘왜 검정고시를 봤느냐, 학창시절에 문제아였냐’고 면접관이 대놓고 물었어요. 번번이 취업에 실패했죠. 외환위기 여파까지 겹쳐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전전했어요.“
대학 신입생 김아연(20)씨는 대학 친구들과 대화 중에 출신 고등학교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검정고시 출신이지만 친구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라고 꼭 강조를 한다”고 했다.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하면 학교폭력의 피해자 또는 가해자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미리 해명을 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가족이라고 해서 늘 한 편이 되어주는 것도 아니다. 대학생 손유라(21)씨는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자퇴를 하기 위해 가족들을 설득하는 데 6개월이나 걸렸다고 한다. 손씨는 “자퇴를 한 뒤에도 가족들이 ‘사회생활 하려면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있어야지, 검정고시를 누가 알아 줄 것 같냐. 인생 망하고 싶냐’고 상처 주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최근엔 ‘대학 입시를 위해 편법을 쓴다’는 색안경까지 더해졌다고 검정고시인들은 입을 모은다. 2000년대 중반 특수목적고나 상위권 고등학교 학생들이 낮은 내신 점수를 만회하기 위해 졸업 직전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보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검정고시는 쉽게 대학 가려고 쓰는 편법’이라는 인식이 더해진 것이다. 대학생 이희경(19)씨는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와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만나는 고등학교 친구들은 ‘너는 좋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면서 “우리 또래에서 검정고시라고 하면 3년 공부할 것을 시험 한번에 끝내는 일종의 ‘치트키’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대입제도조차 비우호적
하지만 현행 입시 제도에서 검정고시생이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입학전형위원회의 작년 발표에 따르면 2018년도 대입에서 수시 모집이 차지하는 비중은 74.0%로 정시의 세 배에 가까웠다. 학생부 기록이 없는 검정고시 출신은 수시모집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수시 중에서도 검정고시생이 아예 응시할 수 없는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은 매년 늘어나 올해는 전체 수시의 약 3분의 1(32.3%)에 달했다. 서울교대 등 전국 11개 교대가 수시모집에서 학생부를 반드시 제출하게 하는 방식으로 검정고시 출신을 원천 차단했다가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은 것은 검정고시에 대한 입시 차별의 단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송혜교 홈스쿨링생활백서 대표는 “검정고시 출신이 제일 잘 갈 수 있는 대학은 한두 곳으로 정해져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검정고시인들이 아예 넣을 수 없는 전형을 갖춘 대학들이 상당수”라며 “학생부교과전형 역시 검정고시 만점을 받더라도 이를 내신 점수로 환산할 때 불이익을 주는 대학이 많다”고 설명했다.
검정고시인이 지원할 수 있는 전형도 불친절하긴 마찬가지다. 대학 신입생 정유은(19)씨는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의 수시 자기소개서 1번 문항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경험을 쓰라’는 것인데, 검정고시생은 1번부터 어떻게 답을 해야 할 지 고민에 빠진다”면서 “정부 주관 토론회 등에서 문제 제기를 했음에도 차별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검정고시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소할 컨트롤타워는 마땅치 않다. 검정고시 문제 출제부터 자격 부여까지 전부 관리하는 시ㆍ도 교육청은 전국 단위의 정책은 수립할 수 없는 구조다. 교육부 측은 “법에 검정고시는 시ㆍ도 교육청의 사무로 되어 있다”면서 개입이 어렵다고 밝혔다. 그나마 학교 밖 청소년을 관리하는 여성가족부가 지역별 ‘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과 매년 두 차례 실시하는 맞춤형 대학입시설명회를 통해 예비 검정고시인들을 지원하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검정고시 지원을 강화하면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 공교육이 흔들릴 수 있다”(여가부 관계자)는 우려 때문이다. 사회에 진출한 검정고시인들이 목말라 할 수밖에 없는 동문의 정이나 자부심은 1989년 설립된 ‘전국검정고시 총동문회’가 그나마 채워주고 있다고 한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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