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각에서 술을 판매한 업주뿐만 아니라, 술을 사 마시려는 청소년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식품위생법과 청소년보호법 중 관련 내용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한 자영업자가 자신의 피해 사례를 알리며 해당 청소년들의 합당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을 올려 주목받고 있다. 이 청원은 17일 오후 2시 현재 1만 7,000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
이 청원을 올린 주인공은 경기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에서 15개 테이블 규모의 작은 술집을 운영하는 이은표(53)씨다. 그는 지난해 추석을 앞둔 10월 2일 밤에 황당한 일을 겪었다.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던 성인 손님이 알고 보니 신분을 속인 청소년이었던 것.
이날은 술집에 평소보다 많은 손님이 몰렸다고 한다. 이씨는 아내와 20대 아들까지 총동원해 겨우 손님을 받았다. 모처럼 매상을 올리는가 싶었지만, 이씨 가족에게 이날은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처럼 기억된다. 돈을 많이 버는 줄 알았는데, 되려 '청소년에게 술을 판 사람'이 돼 벌금을 내게 된 것이다.
당시 상황에 관해 그는 "자정이 넘어 새벽 한 시쯤이었다. 마감하려는데 남아있는 손님들끼리 시비가 붙었다"고 했다. 이씨의 말에 따르면 당시 술집 안 식탁이 넘어가고 부서져 다른 사람들까지 다칠 위기였다. 싸움을 말리던 이씨가 결국 경찰을 부르려고 했더니 한 손님이 "난 미성년자다. 그래도 신고할 거냐"고 그를 협박했다.
이은표씨는 "순간 너무 놀랐다. 평소 신분증 검사를 철저히 했는데, 손님이 몰려든 사이에 몰래 숨어들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경찰에 직접 신고를 했고 벌금 690만 원을 냈다. 하지만, 성인이라고 했던 청소년은 그날 바로 아무 조치 없이 훈방됐다더라"고 말했다.
사건 이후 그는 "현행법으로는 청소년 음주 근절이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은표씨는 청소년들이 술집에서 술을 사 마시지 않으려면 업주만 처벌할 게 아니라 사려는 행위를 한 청소년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죄를 지으면 누구라도 벌을 받는다'는 걸 청소년에게 알려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이씨는 강조했다.
이은표씨는 "철없는 시절, 누구나 실수, 일탈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 또는 대가가 없다면 그것 또한 옳지 않다. 누구는 재미로, 한 번의 일탈로 술집에 오는 거지만, 자영업자는 생계를 잃게 된다"고 토로했다.
고민 끝에 그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단편 영화 제작이었다. 자신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어 세상에 알리면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가게를 촬영 장소로 내놓고 직접 출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지난 9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지호네 가게'다. 악의를 품고 술집을 찾아 행패를 부리는 청소년과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자영업주의 이야기다. 이 씨가 주머니를 털어 시작해 한국외식산업협회와 성남시 하나로마트의 제작 지원 기금을 받아 완성했다.
10일부터는 "불합리한 식품위생법 개정과 청소년 음주 관용에 대한 청소년 보호법 개정을 위한 국민청원"이라는 제목으로 국민 청원도 진행 중이다.
해당 청원에는 "어른처럼 술 마시고 싶다면, 어른 대접 해주자. 처벌도 어른들이 받는 것처럼 해주자", "저도 작은 술집 운영하는데 '살려 달라'고 말하고 싶다. 법 개정이 시급하다", "작정하고 하는 거짓말에 속은 사람들이 업주들이다. 속았다고 처벌받는 게 말이 되냐"는 댓글도 달렸다.
이은표씨는 "세상에 알려지면서 피시방 업주분들, 편의점 업주분들도 저희 의견에 공감하시고, 함께 행동하기로 했다. 현재 진행 중인 청원에 20만 명이 안 되더라도 꾸준히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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